젊음의 ‘완벽’과 나이 듦의 ‘누더기’
오래간만에 퀼트를 하기 위해 천을 꺼내보았습니다.
10년이 훨씬 지난 천들을 꺼내 다림질하고 재단합니다.
만드는 법을 잊어버려 여러 영상을 본 뒤, 가장 쉬운 방법으로 두 가지를 구상해 보았습니다.
퍼프방석과 성당창문 바란스를 만들어 보려고 해요.
퀼트 중에서도 손이 많이 가고 오래 걸리지만, 완성미가 높고 볼수록 애정이 갈 거예요.
어렸을 땐 바느질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러고 앉아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는 바느질이란 것이, 젊음과 어울리지 않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바늘과 천을 잡아도 될 시간입니다.
물론 해야 할 일은 많아요. 누가 재촉하지 않아도 하루의 시간은 항상 조금씩 부족한 듯해요.
완성을 위해 몰아치며 하루에 끝내려 했던 것과는 다르게, 아주 조금씩 조금씩 하루의 자투리 시간을 통해 자투리 천을 이어 퀼트를 다시 손에 잡아봅니다.
바느질에 어울리는 피아노 소나타 한 곡도 골라보고요.
영화 아메리칸 퀼트는 1997년작으로, 위노나 라이더의 젊음의 절정에서 만들어진 참으로 예쁘고 감성적인 영화로 기억되는 작품이었는데, 최근 들어 다시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나도 어려서 그냥 퀼트라는 단어에 끌려 영화가 주는 인생의 깊은 뜻을 지나쳤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시 보니 단순한 의미 그 이상이네요.
특히 인생의 굴곡을 지나 이제 묵묵히 행과 불행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바로 눈앞에 닥친 문제 때문에 현실과 사랑의 의미를 간과할 수 있는 젊은 여인을 통해, 이 영화는 각각의 사연을 하나의 퀼트라는 작업으로 인해 조각조각 이어나갑니다.
서로의 이야기도 색감도 달라도 하나로 완성된 작품은 그 하나의 멋진 의미를 가진 인생으로 탄생됩니다.
할머니들이 결혼과 공부, 인생이라는 불확실한 미래에 갈등과 불안을 느끼는 위노나 라이더에게 말하는 메시지는 그 당시 저도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는데, 지금 와서 다시 보니 가슴에 와닿습니다.
"젊은 사람은 완벽을 추구하게 마련이야.
하지만 나이 든 사람은 누더기 조각들을 바늘로 꿰매는 법을 터득하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삶을 하나의 무늬로 바라보라. 행복과 고통은 다른 세세한 사건들과 섞여 들어 정교한 무늬로 이루고, 시련도 그 무늬를 더해주는 색깔이 된다. 그리하여 최후가 다가왔을 때 우리는 그 무늬의 완성을 기뻐하게 되는 거니까..."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어느 순간에도 사랑 안에서 머물라고 충고합니다.
할머니들이 위노나 라이더의 결혼 선물로 준비하는 퀼트 작업의 컨셉도 '사랑이 머무는 곳'입니다.
각각의 사연이 있는 할머니들의 젊은 시절 이야기는 사랑, 배신, 아픔, 기다림으로 모두의 색이 다릅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작품이 다른 색으로 연결되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나이가 조금 더 들어야만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퀼트... 다시 꺼내 보는 오래된 천들.
이번 작품의 이름은
Love…Begin Again,
사랑, 다시 내게로 돌아오다.
그 시절의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번 작품에 이름을 붙여보았습니다.
천을 고르고 한 장 한 장 재단하고 손바느질과 솜을 집어넣어 다시 꿰매는 작업이 예전에는 완성의 순간만 바라보며 조급해했던 것 같은데, 이젠 급할 것도 없지요. 순간순간 번거롭다고 생각했던 부분조차도 이제는 사랑의 순간으로 느껴집니다. 솜을 넣기 직전 손바느질이 끝난 뒤 세탁을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재촉이 되네요.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도 마음만큼은 여유롭고 차분해지는 이 시간, 바로 퀼트의 매력인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