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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바꿈 Dec 19. 2023

삼일천하 내 최고의 명품!

감색 프로스펙스 운동화!

 나는 부모님 말씀, 선생님 말씀이 곧 부처님 말씀이요, 성경책이라 믿었던 순박한 소년이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메이커 운동화가 유행처럼 번지는 바람에 내 순박함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엄마한테 신발을 사달라고 졸랐는데 처음치곤 대담하게도  한 켤레에 만 원이 넘는(10,500원)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간절히 바랐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3~4백 원 했고, 3~4천 원이면 고급 운동화를 얼마든지 살 수 있었던 시대였다.  사실 시장표 운동화 한 켤레만 있어도 축구하고, 달리고 등하교할 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그저 학교에 프로스펙스 신발 붐이 일어났고, 그 신발을 신고 다니는 친구 발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내 머릿속에는 무조건 있어야 하는 운동화로 자리 잡았다. 한 켤레에 만 원이 넘는 운동화가 있다니!  엄마는 미쳤다며 혀를 내둘렀다.  


 꿈도 꾸지 말라던 엄마는 말일이 지나고 월초가 되자 노란색 프로스펙스 로고가 박힌 감색 운동화를 내밀며 나보다 더 활짝 웃었다.  운동화 끈을 묶어 주면서  ''네 발이 금방 커지니까 그런 거지 비싸서 그런 게 아니야!" "신다가 작아질 수 있으니까 한 치수 더 크게 샀는데 괜찮아?" 내 뒤꿈치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운동화 코를 눌어보고는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더니 "멋있네 우리 아들 근데 요즘 운동화는 금덩이에서 실을 뽑아 만드는지 원! 아껴서 잘 신어 미리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하셨다.  자본주의의 쾌락을 맛봤던 이날, 내 기분은 옥황상제를 뚫고 지나갈 판이었다.  등굣길을 걷고 있는 건지, 날아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몸이 가벼웠고, 백설 공주에게 독이든 사과를 건네면  딱 어울리는 담임선생조차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운동화가 주는 행복에 빠져 산지 삼 일째 되던 날, 금쪽같은 운동화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늘 그랬던 것처럼 복도 신발장에 운동화를 벗어두고 실내화로 갈아 신었는데 누군가의 손을 탔다.  살펴보니 프로스펙스 멤버들은 실내화 주머니에 신발을 담아 제 책상에 걸어두고 있었다.  이미 한 두 번이 아니었던 일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한발 늦은 깨달음은 신발을 찾을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학교 쓰레기통을 다 찾아보고 다른 교실 신발장을 샅샅이 살펴봐도 운동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가 미군부대 군인 집 파출부(가사도우미 or 하우스키퍼) 일당으로 불같은 아버지 몰래 사주신 운동화는 삼일천하로 사라졌다. 나는 충격이 제법 컸다.  해 질 무렵 다 떨어진 실내화를 신고 집으로 가는 길은 지금 생각해 보면 논산훈련소 연병장에서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참고로 나는 혼자 입대했다) 부대 입구로 들어가는 기분과 같았다.  


 마침 동네 어귀에 나와있던 아버지가 눈물로 얼룩진 내 얼굴과, 실내화를 보더니 그 까닭을 물었다. 방금 전까지 더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아버지의 물음에 제대로 눈물샘이 터졌다.  "흐흐흑 분명히 신발을 벗어놨는데 어떤 놈이 훔쳐 갔어요.... 흑흑 꺼이꺼이 훌쩍" 아버지는 그깟 신발 가지고 사나이가 운다며 나를 달랬으나,  모든 사실을 알고 난 뒤 태도가 돌변했다.  만 원이 넘는 운동화에 뒤 목을 잡았고, 삼일 만에 신발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애꿎은 엄마는 나보다 더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이날 이후 고등학교까지 나의 운동화는 이태원표 짝퉁이 도맡았다.(운동화 때문에 큰 불편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너무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신발장에 계절별, 활동별로 신발이 꽉 들어차있는데 신고 다닐 신발이 없다는 세상에 살고 있다.  최근 전두엽을 강타한 뉴스가 떠오른다. 날씨가 추워서 반려견도 패딩을 입고 산책을 나간 다는 소식이었다.  이어지는 자료 화면은 강아지가 모자 달린 패딩을 입고 산책하는 장면이 나왔고 그 가격이 80만 원 하는 명품이라며 반려견 용품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뉴스였다.  아마도 이 영상을 본 누군가(반려견주)는 우리 아이(강아지)도 명품 패딩을 입혀야 한다는 주문에 빠져 나처럼 누군가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지 않았을까?


 누구나 가져야 하는 명품을 비꼬는 말로 '흔해빠진 명품'이라는 모순된 말을 쓴다.  때문에 세상에 하나뿐인 상품, 나만을 위한 서비스를 추종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삼일천하로 끝나버린 '나의 최애 명품 프로스펙스 운동화' 덕분에 명품에 대한 욕망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앞에 갖다 놔도 이름조차 모르는 까막눈이다.  다만, 책과 강의에서 만난 명인은 제법 파악해 놨다.  프랜차이즈 홍수 속에서 손맛을 이어가는 명장 음식점도 몇 군데 알고 있다.  명품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갖고 있으면 언짢을 수 있지만,  '검이불루(檢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하는 명인, 명장은 많으면 많을수록 끝내주는 세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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