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냥 꿈꾸게 해 주세요!"
호떡과 어묵의 일그러진 꿈!
각본 있는 드라마 형편없는 연기가 펼쳐지는 시장투어 촬영장소로 이곳이 선택됐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호떡은 시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쫀득하고 달콤한 맛을 선사하려는 마음으로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같은 시간 탱글탱글한 식감 제 몸을 직접 담가 우려낸 감칠맛 나는 육수로 서민들의 추위와 허기를 달래려 했던 어묵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들의 꿈이 일그러지는 비극이 다시 펼쳐졌다. 민생투어라는 촬영이 있을 때마다 늘 반복되는 일이다. 작은 꿈을 카메라 플래시에 짓밟히고 떠난 선배 호떡과 어묵이 남긴 말 “우리 그냥 꿈꾸게 해 주세요!”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시장바닥에 묻히고 말았다.
호떡은 임오군란 때 청나라 상인이 데려와 오랑캐(호) 떡이라는 갖은 수치와 모욕 속에서 꿋꿋이 대한민국 정착에 성공했다. 힘든 과거를 뒤로 꿀, 조청, 흑설탕과 여러 곡물의 씨앗까지 품어가며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 호떡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 어묵의 인생도 파란만장하다. 1900년대 초 일본인들이 가져온 ‘어묵’이라는 비표준 외래어를 극복하고 국민 간식으로 거듭났다. 자만하지 않고 연구개발에 전력을 다한 결과 동장군을 한 방에 보내버리는 마법의 국물까지 갖췄다.
이 둘은 일상에 지친 시민들에게 달콤하면서 쫀득한 맛, 뜨끈하면서 시원한 삶의 맛으로 기억되는 꿈을 꾸고 있었다. 한입 베어 물면 자동으로 번지는 환한 미소, 탱글탱글 입에서 살살 녹아 넘어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웠다. 때가 되면 검은색 슈트를 걸치고 수많은 카메라와 함께 나타나 되지도 않은 연기를 펼치기 전까지만 해도 호떡과 어묵의 꿈은 이루어질 것 같았다.
“옌장 넓은 시장에서 하필 나를 집을 게 뭐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어묵,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호떡. 이들의 속도 모르는 떡볶이와 순대가 엄청난 경쟁을 뚫고, TV와 신문에 출연한다며, 부러워했다. 소박한 꿈을 지녔던 국민 간식은 파렴치한들의 공갈 영상에 출연하게 되면서 영혼 없는 어색한 연기에 맞춰 사진용 소품으로 생을 마감했다. 플래시가 터지기 전, 故 호떡과 故 어묵이 남긴 작은 외침 “우리 그냥 꿈꾸게 해 주세요!”는 시즌마다 반복되는 간절한 유언으로 기록됐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데 좀처럼 변하지 않는 반짝 시장 행보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또 그들 중 누군가 국민의 대표가 되고 행정을 거머쥔 수장이 되는 건가? 수장이 되면, 호떡 베어 물고, 어묵 국물 마시며 떠들었던 말을 기억할까? 밤새 꼬치에 제 몸을 꼽고, 육수 품어, 시민과 만날 날을 기다렸던 어묵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화상투성이 주름진 손으로, 달궈진 기름 바닥에 누르고 뒤집어야 완성되는 호떡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부디 이번에는 이론과 지혜, 현실감각을 갖추고, 호떡과 어묵이 살아내고 있는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인물이 시장으로 찾아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