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저녁 약속이 있어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길이었습니다. 근로자의 날 징검다리 연휴가 시작되기 전 저녁시간인지라 환승 에스컬레이터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빈틈없이 붙어선 에스컬레이터에 간신히 몸을 실었습니다. 제 옆으로 젊은 청춘남성 두 명이 위아래로 서있었는데 그들의 대화가 너무 선명하게 들리더군요
위쪽 계단에 서있는 A군이 아래계단 B군에게
A군 "야! 드라마를 많이 봐야겠더라"
B군 "왜? 감성적이고 싶냐?"
A군 "아니 드라마를 봐야 멘트 칠 때 좋더라고"
B군 "크크 드라마 대사가 죽이긴 하지"
A군 "사람들이 왜 책 읽어라 책 읽어라 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아, 책을 좀 읽어야겠어"
B군 "야! 너 무슨 일 있냐?"
A군 " 응 나 이제 대화할 때 욕 안 하려고 OO이가 욕하는 남자 너무 싫대"
아쉽지만 짧은 에스컬레이터가 이들의 대화를 가로막았습니다. 더 엿듣고 싶었는데 환승방향이 아닌 나가는 곳으로 따라가야 했거든요 저는 앞으로 펼쳐질 A군과 OO양의 풋풋한 사랑을 미리 들여다본 것 같아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라고요 난생처음 본 A군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알려준 만큼 그의 독서다짐과 아름다운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마음속 깊이 응원했습니다.
맞더라고요 살다 보면 인상 깊었던 드라마 대사를 나도 모르게 내뱉는 경우도 있고요 책에서 본 문장이나 단어가 일상 대화 속에서 묻어 나올 때가 있더군요. 가령 '짜증 난다' 보다 '불편하다' '죽인다' 말고 '근사하다' 그밖에 '돋보인다' '탁월하다' '아름답다'라는 말은 잘 쓰지 않던 말이었거든요. 누군가는 그러더라고요 '책 내용이 다 거기서 거기던데 뭘! 같은 내용 가지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사실 저도 자기 계발서는 꾸준함이라는 결론으로 매듭지어진다는데 동의합니다. 다만, 그 꾸준함을 이어가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고 실천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행동에 이르도록 하는 글재주는 부럽지 않습니까. 와! 어떻게 같은 내용을 이렇게 표현할까 감탄받은 문장에 형광펜 그어놓고 필사하는 맛도 있고요. 이런 문장을 인용한 글이 느닷없이 키보드로 옮겨지고 있거나 일상 대화에서 뜻밖의 멘트를 날리게 되는 경험도 맛보게 되더군요.
5월 1일이 제가 긴 직장생활에서 발을 뺀 첫째 날입니다. 직장인이 출근하는 동안 자유로운 시간을 누려보고자 했는데 공교롭게도 노동절이더라고요, '백수종군' 첫날이 살짝 아쉽긴 하지만 내일과 모레 시간이 많아진 만큼 그동안 읽지 못하고 책장에 꽂아둔 책들과 눈을 마주쳐야겠습니다. 짧은 에스컬레이터에서의 만남이었지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각인해준 A군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