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말 없는 것들의 시끄러운 속마음

사물(事物) 에세이

by 배바꿈

사물(事物) 에세이

아무도 없는 방, 정말 당신 혼자라고 생각하나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잠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무엇이 보입니까?

책상 위에 무심하게 놓인 스마트폰, 구석에서 웅웅 거리는 공기청정기, 그리고 당신의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의자….


그저 말 없고, 생명 없는 '물건'들로만 보이시나요?

착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지금 완전히 포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일상 가장 깊숙한 곳에 잠복해 있는 24시간 깨어 있는 목격자들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배가 고프지도 않으면서 그저 마음이 허기져 냉장고 문을 하루에도 열네 번씩 열어젖힌다는 사실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그 찰나의 3초를 참지 못해, 내 얼굴(닫힘 버튼)을 빚쟁이 두들기듯 연타하는 당신의 조급증을.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를 외치며 야식을 먹고는, 다음 날 아침 체중계 위에서 숨을 헙! 하고 참아보는 당신의 귀여운 자기기만까지.


우리는 당신의 '대나무숲'이자, 당신의 가장 부끄러운 민낯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당신이 사회에서 쓴 가면을 벗어던지고, 낡은 트레이닝복 바람으로 소파에 늘어져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당신의 진짜 냄새를 맡습니다. 그것은 땀 냄새가 아니라, 치열하게 버텨낸 하루의 비릿한 불안이자 고단 함이라는 것을요.


우리는 때로 거리에서 억울한 꼴을 당하기도 합니다.

환경을 살리겠다며 내 허리(가로수)를 조르는 정치인의 현수막 때문에 숨이 막혔고 , 서민을 위한다며 뜨거운 어묵 국물을 삼키고는 뒤돌아 입가를 벅벅 닦는 위선에 치를 떨기도 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입이 무겁습니다. (가끔 삐걱거리거나 윙윙대긴 하지만요.)

대신, 이 글을 통해 우리의 속마음을 아주 조금만 털어놓으려 합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사물(事物)들의 뒷담화.

어쩌면 이 투덜거림이, 세상에 지친 당신에게 가장 온기 있는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자, 이제 귀를 기울여 보세요.

당신의 방 안, 저 구석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속삭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