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덕에 얻은 것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by 행복한나


“이런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앞으로 치료 잘 받으시길 바랍니다…. 하아…”

생일을 일주일 지난 후 나는 산정 특례라는 생일 선물을 받았다. 그것도 나라로부터.


이름부터 생소한 코로나 시국. 세상과 단절된 이 생활이 1년이나 넘게 지속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기약도 없이 입학식도 못한 채 내복차림으로 1년여 동안 집안을 누빈 큰 아이와, 꽃이 피고 새 계절이 돌아와도 놀이터 한번 제대로 누리지 못한 둘째와 집에서 오붓하게 지지고 볶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안겨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뒹구는 시간을 가졌고, 최대한 간단히 식사를 차릴 수 있는 꼼수도 늘어갔다. 처음 몇 달은 아이들의 등원준비로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되어 느긋한 게 좋았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도 너무 즐거웠다. 하지만 단 몇 달이었다. 기간이 그렇게 길어질 줄이야. 그리고 육아의 고단함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없어 더 힘들었다. 자고로 아줌마들의 스트레스는 단 것들을 앞에 놓고 다다다 해야 속 시원히 풀리는데 그걸 못하니 더 답답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아이들과는 조금 멀어지고 싶었고, 친구들과는 가까워지고 싶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더니, 정말 사회적 거리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코로나 시국을 겪으며 깨닫게 되었다. 자구책으로 카페인과 알코올을 택했다. 깨어 있는 시간에는 맑은 정신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 달콤한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고, 육퇴 후에는 알코올로 나의 하루를 토닥였다. 스트레스는 풀렸으나 덕분에 위염을 얻었다. 그리고 이석증과 피부 발진까지 덤으로 따라왔다. 원플러스 원, 아니 원 플러스 투… 어쨌든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꼼수만 늘어 아주 간단하게 차려진 아이들의 식사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 게 당연지사. 하지만 며칠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는 자만심과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큰 병원에 가보세요.’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게 자꾸 꺼려졌다. 결국 몇 달을 미뤄 빨간 반점들이 사라질 기운은커녕 점점 더 번져가는 게 보이자 결국 난 백기를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동네 유명 피부과는 말 그대로 유명하기 때문에 대기가 너무 길었다. 맘카페에서 한참을 검색했다. 어디가 어떻고, 저기는 선생님이 어떻고… 수없이 다져진 검색능력 덕분에 미용시술뿐 아니라 진료를 잘한다는 병원을 찾아냈다. 그 의견에 동조하는 많은 댓글들도 확인했다. 더블 체크 오케이. 평소에도 신뢰를 하고 있던 맘카페였던 지라 이번에도 굳게 믿고 검색 결과에 따른 병원으로 향했다. 스르륵 열리는 자동문 뒤로 하얗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각종 보톡스, 필러 같은 피부관리 프로그램광고가 나를 반겼다. 게다가 일이 너무 많아 피곤에 찌든 간호사들도 없었다. 세련된 분위기 그 자체였다. 흐음… 미용시술만 잘하는 거 아닐까. 진료도 잘한다고 했는데 번쩍 거리는 광고를 보자 정작 아픈 환자는 못 돌보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나를 감쌌다. 대기가 없어서 온 건데 환자가 너무 없으니 불안해졌다.


병원을 제대로 다 둘러보기도 전에 내 이름이 불려서 진료실에 들어서니 나보다 훨씬 젊어 보이고 어여쁜 의사 선생님이 앉아있었다. ‘다 가졌군.’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선생님은 어떤 점이 불편해서 온 거냐며 상냥하고 친절하게 물었다. 그 물음이 퉁명스러웠으면 그나마 '성격은 별로네…'라며 그나마 위안이 되었을 텐데 말투도 친절하다. 쳇.


피부 발진을 드러내고 증상을 이야기할수록 선생님의 표정이 갸우뚱해졌다.


"환부가 가려우신가요?” “아니오.”

“혹시 통증은 없으신가요?” “아니오.”


아니라고 답할 때마다 그 아리송 함은 더 늘어가는 듯 보였다. 그리고 선생님에 대한 내 의심도 몇 곱절이 되었다. 결국 선생님은 자신은 본 적이 없는 질환이라며 일단 처방은 내려줄 테니 호전이 없으면 다른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무서운 얘기만 남기고 나를 내보냈다.


‘역시 미용진료만 잘하는 곳 이구만. 다시는 오지 않으리.'



by pixabay

이튿날, 난 결국 동네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피부과로 다시 향했다. 전날의 불신 덕분인지 대기가 긴 것쯤은 이제 문제 되지 않았다. 요즘 대 유행한다는 병원 오픈런. 여기서는 최근이야기가 아니었다. 맘카페에서는 예전부터 “xx피부과 오픈 얼마나 전에 가야 할까요?” “문 열기 전에 가면 대기 노트 있나요?”라는 말이 유행이었으니까. 나 역시 직원들도 출근 전이라 어둡고 열리지도 않은 문 앞에, 낯선 사람들과 한 마음으로 의사 선생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니, 이름을 적을 대기 노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름을 적으니 수없이 많은 질문을 받았던 것인지 심드렁한 간호사가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주변 카페는 아마 그 병원과 상생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이름을 적고 근처 카페로 다들 향했고, 덕분에 대기하는 시간 동안 짜증과 화,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커피 향을 맡으며 진료를 기다릴 수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 그 어떤 것 보다 반가울 수 있을까. 드디어 선생님을 영접하는 시간. 내 환부를 보더니 1 분도채 되지 않아 명쾌하게 진단을 내린다.


“습진이네요.”


아… 기다린 두 시간이 아깝지 않다. 전날 저녁 우리 둘째가 막았던 변기가 뚫리는 기분. 어제 갔던 병원 예쁘장한, 다 가졌다고 생각했던 그 선생님이 더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다. 다 가지진 않았군.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는 오늘 역시 처방받은 약을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역시 소문대로야.


하지만 약을 먹고, 연고를 2주 넘게 꼬박 발라도 발진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프거나 가려운 증상이 없으니 굳이 그 긴 대기를 버티며 또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다. 두어달쯤 지났을까 발진은 점점 퍼져나가는 듯했다. 몸 여기저기 붉은 점이 생겼다. 결국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선생님은 이번에도 1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내 상태를 보고는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좀 더 센 약을 쓸 거예요. 연고는 장기간 발라야 하고, 다 나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