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가 코앞이지만 아직 사춘기입니다.
깍두기
1. 명사 무를 작고 네모나게 썰어서 소금에 절인 후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과 함께 버무려 만든 김치
2. 명사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이나 그런 신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후다닥 점심을 먹고 나면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인 사이 방황하듯 우물쭈물 곁을 맴돈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것도, 센스가 넘쳐서 눈치껏 요령을 배울 줄도 몰랐던 난, 당시 최고의 인기였던 고무줄놀이에 잼병이었다. 두 발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때로는 새의 날갯짓처럼 다리를 높게 찢기도, 때로는 꽈배기처럼 꼬기도 하면서 뜻도 모르는 노래에 두 발을 맡기곤 다들 열심히 땀을 흘렸다. 두 명씩, 혹은 세 명씩 팀을 짤 때 인원이 애매하게 남으면 당시 자비로웠던 친구들 덕분에 깍두기라는 명예를 얻었다. 이 팀도 아닌, 저 팀도 아닌 그야말로 애매한 포지션. 내가 잘하든 못하든 친구들의 승패와 상관없었으니 말 그대로 무적이다. 뭐 그 뜻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인원에 딱 맞게 팀이 만들어지면 어디에도 낄 수 없었던 나는 전봇대 마냥 다리에 고무줄을 끼고 목청껏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 이기는 편 우리 편. 누가 이기면 어떠냐. 모두 내 친구들이었는 걸. 어디에도 끼어 있으나 어디에도 확실하지 않은 그 상태, 깍두기. 어느 순간 내 인생이 깍두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뚱땅 뚱땅. 자그마한 손가락이 버겁게 건반을 몇 번 오가면 나름 들을 만한 수준이 되었다. 수없이 연습을 한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럴 때면 부모님은 그 당시 거금을 주고 산 피아노의 값이 아깝지 않다는 듯 우리 딸 최고라는 듯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 하지만 이내 실력은 거기에서 끝이었다.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쓱싹쓱싹. 열심히 그렸다. 요령도 배우고, 채색도 열심히 했다. 도화지 속의 사람들이 뛰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소나기가 내리 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 속의 산이 내가 그린 건지, 저 산이 그대로 옮겨 온 건지 자존감 하나는 끝내줬던 내 마음에 셀프 칭찬이 하나 추가되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화가가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나 소질 있나 봐!라고 생각할 찰나 그림을 정말 잘 그리는 친구를 만났다. 내 연필은 내 마음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나 친구의 손은 친구의 의지대로 향했다. 분명 같은 것을 보고 그렸는데 결과물은 너무도 달랐다. 아… 이것도 아닌가 보다.
부지런한 엄마 덕에 친구들이 배우는 것은 조금씩은 경험했었다. 악기는 기본이고 수영에 글쓰기 수업, 심지어 볼링도 배웠다. 흥미를 가지고 시작해서 가끔 칭찬을 듣곤 했지만 내 재능은 어른들의 칭찬, 거기 까지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친구들을 보게 되니 점차 움츠려 들었다. 여러가지에 다재다능하면 팔방미인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난 거기서 '다능(多能)'을 빼야하니 '팔방인' 그 어디쯤 되시겠다.
꼭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다른 재능으로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부지기수. 나도 내 재능이 뭔지 찾아볼까 싶다. 하지만 이내 좌절모드로 스위치 되었다.
금손을 가지고 있어 만들기를 뚝딱 잘 해내거나
추진력이 좋아 재테크를 잘하거나
공부를 잘해서 취업을 잘했거나
육아의 달인이라 아이들을 열심히 키워내거나
나의 정확한 위치를 가늠해보니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잘'은 아니다.
제태크를 했다. 다행히 내집은 있으나 '은행'의 지분이 한참
공부는 했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육아의 달인인가 싶지만 매번 식사는 대기업의 도움으로, 살림은 이모님 3종세트(식세기, 로봇청소기, 건조기)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중.
인터넷, sns등에서 다들 자기 PR이 한창이다. 자기의 재능을 뽐내느라 열심이다. 춤추고 노래하고, 만들고 꾸미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애담까지도 자신의 콘텐츠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춤도, 노래도, 심지어 변변한 연애스토리도 없어 깨알같은 연애팁도 없다. 아... 그동안 뭐 하고 산 거니...
이쯤 되니 이게 내 재능의 문제인지 엉덩이가 가벼워 진득하게 오랫동안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성격의 문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글쓰기에 갓 입문한 병아리 브런치 작가. 아직 스무 편도 완성하지 못했는데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고 나니 나는 이것도 안되는가 싶은 자괴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gift
1. n 선물, 기념품
2. n. 재능, 재주
gift는 선물이다. 재능도 아마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다고 했는데 어린 시절 너무 울었던 탓일까, 아니면 엄마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일까. 그래서 산타할아버지도, 조상님도 내게 특별한 재능을 안 주신 걸까. 내년에는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정말 산타 할아버지께 글쓰기 재능이라도 달라고 기도라도 해 볼까 싶다. 물론 '재능이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이제 가진 것 없는 내 인생을 그냥 이대로 쭉 살겠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항상 중간에만 머물러 있는 내 잡다한 재능을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이제라도 새로운 재능을 찾아야 하는 걸까. 미로 같은 인생에 더 복잡한 새 길이 하나 더 생긴 느낌이다. 역시 내 인생에 쉬운 길은 없나 보다. 생각할 과제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여기도 찔금, 저기도 찔금… 깍두기 같은 인생. 앞으로 어떤 재능을 찾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이제는 깍두기를 하고 싶지 않다.
어떤 걸 하나 파 볼까.
역시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