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홀 계약서 3번 쓰고 500만 원 아낀 협상의 기술

하버드에서 배운 실용 지식을 현실 결혼준비과정에 적용한 사례

by 행복추구권


두 번의 이직 후 비로소 수도권 소재 지방공기업에 안착했다. 우리 커플은 약속한 대로 곧바로 고대하던 결혼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행복감도 잠시, 결혼 준비는 자본주의의 매운맛을 보여주는 지출의 연속이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린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친구의 추천으로 다이렉트 웨딩이라는 네이버 카페로도 유명한 대형 업체를 알게 되어 웨딩박람회에서 비동행 스드메를 계약하여 비용을 아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시작에 불가했다.


결혼 준비 시기에는 스드메 외에도 신혼집 보증금, 신혼 가구/가전, 신혼여행 경비, 웨딩홀 대관비, 부모님 예복, 신랑 예복, 2부 드레스 등 신혼집 비용을 제외하고도 수 천만원을 소비해야 한다.


신혼집 보증금만으로도 예산에 여유가 없어지는 상황에 이 모든 비용이 아깝게 느껴졌다.


예식과 관련된 부분은 아내의 취향을 최대한 존중하며 따르기로 다짐했지만, 웨딩홀 비용만큼은 너무나 아깝게 느껴졌다. 기것해야 본식 30분 치르는데 수백만원의 대관료에 5만원이 넘는 식비를 부담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식비는 넘어간다 해도 약 30분, 전후시간까지 고려해도 길어야 2시간을 사용하는 공간의 조명과 세팅비, 진행인력 인건비가 수 백만원이라니?


예비부부의 행복을 인질로 삼아 웨딩 업계가 폭리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예식장 선택의 절대권한은 아내가 쥐고 있었다.


아내는 식장 선택에 있어 까다로운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만족할만한 식장을 찾기 위하여 서울 시내 8개의 식장에 방문하여 상담받았다.


그 중 최종 후보 2 곳이 강동과 서초에 있는 웨딩홀이었다.

강동에 있는 웨딩홀은 장인어른의 반대로 제외되었고, 지방 하객들의 이동편의를 고려하여 서초구에 있는 예식장으로 최종 낙찰되었다.


이제 나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결혼준비를 하면서 협상테이블에 앉을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웨딩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상당 직원들과의 협상에서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협상 관련 책들을 탐독하며 전투에 임할 준비를 했다.


그 중 하나는 [하버드 협상강의]라는 책이었는데, 나에게 결혼준비과정은 책에서 배운 실용지식을 실전에서 바로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스드메 계약을 통해 사전겸험을 쌓고, 가구와 가전을 구매하며 테스트를 거친 나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웨딩홀 계약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협상의 기술을 발휘하기로 했다.


웨딩홀 가계약 당시 가격은 대관료 550만원에 식비 58,000원으로 그나마 일요일 이른 시간이었기에 토요일 피크타임에 비한다면 저렴한 편이었지만, 내 기준에선 여전히 거품이 가득해 보였다.


책에서 배운 지식 중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이 3가지 있다.


1. 앵커링(Anchoring) : 한참 벗어난 가격을 제시하여 중간 지점에서 협상을 성립시키는 것.

2. 매력적인 대안 : 이 곳이 아니어도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활용하는 것.

3. 최종 결정권자의 존재 : 나에게 결정권이 없음을 이용하여 협상력을 끌어올리는 것.



먼저 첫 번째 협상에서 '앵커링 효과'를 적용했다. 가계약 1~2주 뒤 웨딩홀에 전화를 걸었다.



아내가 원해서 이 웨딩홀에서 예식을 진행하고는 싶지만 솔직히 비용이 너무 부담됩니다.
결혼준비하면서 돈 쓸 일도 많고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네요.
혹시 조금이라도 가격을 낮춰주시면 안 될까요?'



얼마를 생각하시는데요?



대관료 300만원에 식비도 5만원이 안 넘으면 좋겠습니다.



직원이 고민 끝에 말했다.


대관료 550만원에 식비 51,000원으로 맞춰드릴게요.
저도 더 이상은 어려워요.



1차 협상 완료.

대관료가 아쉬웠지만, 이 정도면 담당 직원 선에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수정된 계약서를 문자로 받았다.



이후 한동안 예식준비와 신혼집 꾸미기에 몰두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2차협상을 준비했다.

내가 계약한 웨딩홀은 '가계약' 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본식 3개월전까지 유효했고, 그 이후에는 계약 취소 시 위약금이 발생했다. 나는 이 점을 100% 이용하여 위약금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기다렸다.

만약 내가 3개월 남은 시점에서 고객이 웨딩홀 예약을 취소해버린다면 그 3개월 이내에 그 시간대에 결혼식을 진행할 다른 고객을 구하여 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웨딩홀도 난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 가계약 유효기간이 종료되기 직전까지 기다렸다.


물론 리스크는 있었다. 웨딩홀에서 협상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계약을 취소해버리면 우리가 원하던 웨딩홀에서 식을 올리지 못 할 수도 있었다. 아내는 "진상으로 찍혀서 쫓겨나면 어떡하냐"며 만류했지만, 나는 자신 있게 나를 믿어달라고 했다.


2차 협상에서는 '매력적인 대안'과 '최종 결정권자' 기술을 함께 적용했다.


매력적인 대안을 만들기 위해 강남구에 있는 다른 웨딩홀에 가서 가계약을 걸어두었다. 그 웨딩홀도 내가 보기엔 훌륭했지만 아내의 성에 차진 않는 곳이었다.


마지막 2차 협상을 위해 웨딩홀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께서 다른 웨딩홀을 추천해주셔서 가봤는데 비용이 훨씬 더 저렴하기도 하고 또 결혼식이 저희 두 사람만 하는 것도 아니라 부모님들 의사도 중요하기 때문에 저도 마냥 무시하기가 쉽지 않네요.

어머니랑 계속 이야기는 하고 있는 중이긴 한데..
잘 될 지 몰라서... 혹시 가계약 취소도 가능할까요?



상담 직원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 안에서 웨딩홀 상담 담당직원의 난처함을 읽었고,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저랑 아내는 꼭 여기서 하고 싶은데 역시 비용이 문제네요..
어머니가 그 웨딩홀이 훨씬 저렴하니 그 쪽에서 하라고 해서요.


난감해하던 상담직원이 상부 보고 후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말했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것 같네요...
저도 팀장님께 보고드린 뒤에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이 쪽도 최종 결정권자 기술을 사용하는건가?' 불안감이 스쳐지나갔지만 이제는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연락을 받았다.


최종 금액은 대관료 350만원에 식대 48,000원


나의 긴 웨딩홀 협상과정이 종결되며 초기 견적 대비 총액 기준 약 500만 원(하객 300명 기준 산정)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래도 비싼 비용이었지만, 아내가 원하는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 주 주말 다시 웨딩홀에 방문하여 세 번째 최종 수정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나는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단순히 돈을 아껴서가 아니었다.

책 속의 지식이 현실의 불합리한 가격표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원하는 홀에서,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가격으로 예식을 올리는 '최선의 합의'에 도달한 밤이었다.




500만 원의 성취감보다 컸던 건, 당신이 원하는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세상이 정해놓은 가격표에 의문을 던져본 적이 있나요?
여러분은 인생의 큰 선택 앞에서 나만의 협상 카드를 꺼내본 경험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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