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했다.
영상 편집도 해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목공도 하고,
색연필 드로잉도 해봤다.
하지만 결과물을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은 거의 없었다.
내 눈에는 늘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건 아직 허접해. 이걸 누가 좋아하겠어?”
그렇게 나는 완성된 것들을
내 방 한쪽에만 쌓아두었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
나는 아마 이렇게 보였을 것이다.
“쟤는 맨날 뭘 한다고 하면서 결과물이 없어.”
실제로 아버지도 그런 말씀을 하셨다.
“어차피 또 금방 싫증 낼 거잖아.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하냐.”
사실은 달랐다.
나는 쉽게 싫증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를 두려워했을 뿐이다.
완벽하지 않으면 내보일 수 없다는 강박이
나를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 무언가를
내보이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내 강아지를 위해 만든 파라코드 목줄 하나.
나는 그저 귀여워서 지인에게 선물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지인은 내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하며 말했다.
“너 이거 팔아도 되겠다.”
나는 당황했다.
내가 만든 걸 팔자고?
내 눈에는 여전히 부족해 보였는데,
다른 사람 눈에는 예쁘고 괜찮아 보였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그러나 상황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 지인이 자기 가게 한편을 내어주겠다며
내 제품을 진열해 주었고,
나는 준비도 없이 세상 앞에 서게 되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내 목줄을 귀엽다며 칭찬했고,
직접 돈을 내고 사갔다.
그 순간 깨달았다.
불완전했던 건 내 목줄이 아니라, 내 자신감이었다.
완벽해야만 내보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었다.
사실 기업도, 역사도 다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을 내놓는 게 아니라,
만들고, 내보이고, 피드백받고, 보완하면서
발전해 온 것이다.
완벽주의는 발전의 시작을 가로막는 벽일 뿐이었다.
내 목줄은 내 기준에선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것을 좋아해 주었고,
그 사실이 내 마음속의 벽을 무너뜨렸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완벽해야만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시작했기 때문에 비로소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완벽은 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