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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Here Live Here May 13. 2017

느리고 안전한 속도의 가치

쓸모없음의 쓸모있음(無用之用)

네덜란드 사는 친구가 1970년대에 지은 오래된 단독주택을 작년 11월 구입했다.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는데, 이 집을 상속받은 형제들 간 유산상속 다툼이 길어지면서 과연 이 집이 자신의 손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인지 노심초사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집이라는 이유로 번거로운 과정과 긴 시간을 견뎌 꿈꾸던 집을 손에 넣은 그녀.


얼핏 생각해보면 긴 시간 힘들게 기다린 만큼 서둘러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얼른 이사 들어가고 싶어  것 같다. 그러나 이 단독주택은 친구가 구입한 날로부터 6개월이 흐른 현재, 전문가와 논의해 설계 계획을 확정하고 친구 부부가 자재를 보러 다니는 단계에 다다렀을 뿐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미 입주를 해서 몇 개월 살아봤을 기간이다.




친구 부부는 300평에 달하는 정원 리모델링까지 외주를 주자니 인건비가 비싼 네덜란드에서 예산을 감당하기 어려워 정원 쪽은 직접 손보기로 결정했다. 아이들 아직 어려 오롯이 부부 둘이서 필요 없는 나무들을 뽑고 흙을 다듬고 새 나무들을 심고 있다. 정원에 새로 심을 묘목 1차분이 900그루였으니 정원을 손보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허리가 끊어지고 손이 닳을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육체적 에너지를 한계까지 소진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점차 수도의 길로 들어서는 듯 보였다. 그리고 최근에 올라온 블로그 글을 보니 이제 해탈의 경지에까지 이른 듯 보인다.   


그녀가 최근에 올린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사업체로부터 4월 초에 예산안을 받은 후 5월 안에는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사업체 사 Peter가 자신의 아이들 봄방학을 맞아 2주간 가족들과 휴가를 다녀오겠다고 하여 공사 시작이 6월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화내는 것을 넘어서 '인생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깨달으며 (해탈의)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해탈의 웃음을 터트린 사건과 내가  일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요즘 우리 집의 바로 윗집이 인테리어 공사 중이다. 공사 시작 전 흔쾌히 인테리어 공사 동의서에 동의를 해주었건만, 5월 9일 대선일 오전 8시 30분경부터 목공 공사로 소음과 진동이 시작되었다.


엘리베이터에 붙여진 공사 안내문 담당자에게 전화를 거니 세 번째 시도만에 전화를 받는다.


내가 "인테리어 공사하는 것에는 나도 동의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집에서 쉬는 날에는 공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동의한 것이다. 매우 불쾌하다."라고 이야기하니, 한숨만 푹푹 쉴 뿐 답이 없다. 약 1분여의 시간이 흐른 뒤 "(멈출 수는 없고) 되도록 조용히 하겠다"라는 답을 힘겨운 목소리로 다.(목공 공사를 어떻게 조용히 한단 말인가?)


나는 애초 엘리베이터 안의 공사 안내문에 적힌 수많은 공사 항목들을 보며 5월 초 휴일도 많은데 이를 5월 첫 2주 안에 마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분명 공사업체 사장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가능하다'라고 의뢰인에게 약속하고, 이렇게 무리해서 휴일에도 공사를 강행하는 것일까? 나는 그 답을 알기에 윗집 공사 업체 사장에게 한 번 일갈 후 더 따져 묻지 않고 대화를 마쳤다.




'가능한 한 기간 내&가능한 한 적은 돈으로'.

이것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기 원하는 대부분의 집주인들이 내세우는 공사업체 선정 기준이다.


이 기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마음'만 들어있다. 휴일에 집에서 조용히 쉬고 싶은 이웃의 마음, 부족한 공사기간과 타이트한 자금 안에서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해야 할 공사업체의 사장의 애타는 마음은 내 사정이 아니라는 마음이 들어있다.


물론 소비자가 이 기준을 들이댈 때 "Yes"라고 한 공사업체 사장들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소비자 쪽에 있다고 생각한다. 공사업체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일을 수주를 하기 위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빠른 시간 안에 적은 돈으로 공사할 수 있다'는 무리한 약속)를 생산해서 쥐어주는 쪽이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이 무리한 약속을 답으로 정한 상태에서(답정너) 업체에 문의를 하기 시작한다.


나는 이 약속의 숨은 의미가'당신(소비자)에게 당장 쓸모 있어 보이기 위해서라면 나(공사업체)는 자존감(적당한 시간과 돈이 있어야만 만들어낼 수 있는 공사의 완성도와 안전한 공사 과정)을 내려놓겠습니다.'로 파악된다.




쓸모없음의 쓸모있음(無用之用)(Image via Pinterst)


먼 옛날 중국의 장자는 '쓸모없는 것이 쓸모있다'는 말을 했다.


장자의 친구자신의 집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몸체가 뒤틀리고 옹이가 가득해서 먹줄(Inked string)을 튕길 수도 없고, 가지 또한 꼬불꼬불해서 자(ruler)를 대기가 어려워 다른 나무들처럼 재목으로 쓸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장자는 그 나무가 도끼에 찍혀나갈 일도 없고 누군가가 훔쳐갈 일도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하며 그 커다란 그늘 밑에서 한가로이 드러누워 자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쓸모있는 나무는 그 쓸모로 인해 고통을 겪고 타고난 수명을 다하지 못한다. 쓸모없는 나무는 유유자적 커나가며 수명을 다한다.


그렇다면 나무 자신을 기준으로 볼 때는'(남들에게) 쓸모있음이 (나무 자신에게는) 쓸모없음이 되고, (남들에게) 쓸모없음이 (나무 자신에게는) 쓸모있음'이 된다.


그렇다면 사람인 우리는? 과연 처음부터 끝까지 공백 없이 촘촘하게 (남들에게) 쓸모 있어야 훌륭한 인생일까?만약 내가 나를 위해 쉰다면 그 순간 나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걸까?그리고 내가 타인(공사업체, 이웃집)에게 여유 있는 일정과 휴식을 허락한다면 그 시간들은 쓸모없는 것이 되는 것일까?


나는 우리 사회가 쓸모없는 것의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소비자는 여유 있는 공사일정이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지만 실은 공사의 완성도를 높이는 쓸모로 연결됨을 깨달아야 하고, 공사업체는 의뢰인에게 쓸모 있기 위해 무리한 약속을 하는 것을 그만두고 스스로에게는 쓸모 있는 선택(여유 있는 공사일정과 예산, 휴식)을 함으로써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소비자에게 자신있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토요일인 오늘도 윗집은 무리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전 7시공사를 시작했다.


쓸모없어 보이는 느리고(=실은 느린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속도') 안전한 약속이 가장 쓸모있는 가치를 지닌 것임을, 잠재 소비자들과 공사업체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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