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

by 밤호랑이

그저께부터 인가 기분이 이상했다. 후두염 때문에 몸이 너무 피곤한 탓이 컸겠지만, 며칠 전부터 초조한 마음과 불안한 기분과 죄책감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최악의 칵테일 한잔을 나도 모르게 제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감각들이 예민할 때까지 예민해져서 외출할 때면 잿빛 얼굴로 눈을 흠칫 치켜뜨며 현관을 나설 때가 많았고, 누구든지 나에게 말을 걸기 어려웠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망상이 들었다.

집 앞에 아이들과 자주 가던 최애 동네 카페가 문을 닫았다. 나는 이미 그 소식을 알고 있었으므로, 문 닫기 전날에 꼭 같이 가서 마지막을 장식하자고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그러나 결국 가지 못했다. 사실 못 갈 것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들 일 수록 그 시일이 다가오면 정작 바쁜 일이 생기기도 하고, 타이밍이 어긋나기도 하니까.


자정 출근 전에 이대로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영화를 예매했다. 아바타의 무서운 기세를 꺾은 멜로물, 구교환 문가영 배우의 멜로영화 '만약에 우리'. 난 상영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인상을 쓰며 보게 될 영화라는 것을. 그냥 보지 않으면 뇌리에서 잊힐 그런 영화겠지만, 만약 내가 보게 된다면 굉장히 집중하면서 마음을 쓸 것이라는 것도.


관객 비중은 커플이 반 혼자 온 나 같은 남자관객 반. 이건 예상을 못했다. 이 밤에, 감상에 젖고 싶은 남자들이 이토록 많았던가. (사실 여성 호르몬 수치는 40살 전후로 역전된다)

난 연애에 대한 추억이 없다. 아 있긴 한데 별로 없다. 그래서 이런 영화들을 보면 혹은 연애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마치 아바타를 보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기분이 든다. 무척 애달프고 따뜻한 장면들이라서 한번 즈음 갖고 싶었으나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일들. 그래서 난 유사 기억을 위해서라도 이런 영화를 본다. 그러면 아마도 당신이 이런 이야기들을 꺼낼 때, 나는 다른 누군가가 되어서 당신에게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마냥 갖고 싶은 기억이었으나 꿈이 좌절되어 울상을 짓고 있는 마음속 아이에게 어떤 선물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당신이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상영이 끝난 후 사나웠던 내 마음이 포근하게 가라앉고 잠잠해졌듯이 당신에게도 힐링영화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 있는 곳이 적막한 침대위던 여행지 길 위던 회사던 혹은 그 어디던지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영화 감상평은 아래 사진으로 대체한다.





참고로, 영화 OST는 아니지만 아래 노래 하나 들어줘라.

부탁한다.

https://youtu.be/B_30ia_nGq8?si=lmh5QqWzpEwdSb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