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9

주저리 주저리 해봅니다.

by 밤호랑이

몇 개의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홀드 하다 보니까 또 그때의 아이디어 혹은 감정 마음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 역시 글은 생각날 때 바로 써야 한다.

회사 사물함 아니 내 왼쪽 미니 창고 같은 서랍장을 정리하다가 멍한 나를 나무란다. 같은 종류의 투명 핸드폰케이스만 여섯 개. 강화유리가 열여섯 개. 여러 번에 나눠서 시켰다. 그것도 같은 핸드폰 기종을 쓰시는 아버지 나눠드리고 몇 번 깨진 유리를 바꾸고 해도 남는 게 이만큼이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무료 배송이라는 이유로.

어젯밤에 주문한 것은 나이키 운동화, 끝판왕이라는 면도기, 핫딜로 올라온 화장지와 두루마리 휴지, 역시 핫딜로 뜬 프라이팬. 핸드폰으로 전원 조작이 가능한 와이파이 지원 콘센트 여러 개. 0.8달러짜리 구둣주걱 여러 개.

나의 필요로 구입한 것들인데 생각해 보면 자기만족이다. 다른 사람보기에 열심히 가격비교하며 몇 시간이고 살까 말까 고민하는-영 효율적이지 않고 과소비에다가 쓸데없는 짓거리다. 하지만 자기만족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결국, 물건을 사고 멋대로 판단하고 상대가 썩 원치 않을지도 모를 친절을 베풀고 너를 안고했던 일련의 모든 행동들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어쩌면 안전거리 확보. 급브레이크를 밟을지도 모를 당신과, 지나치게 속력을 낼지 모르는 나에 대한 선제적 대응. 20대 때부터 나는 줄곧 그런 기도를 했다. 내 마음속 모든 파도와 휘청이는 하루하루와 불길 같은 울분 같은 그런 것들이 언젠가는 잠재워지길, 정상적으로 되돌아오길 정작 정상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도.


그리고 그런 기도를 했던 것도 생각난다.

'더 이상 내 바운더리에 들어오지 않게 해 주세요. 안됩니다'

여전히 답장을 기다리지 않는 카톡을 쓰고, 되돌아오지 않아도 그렇게 신경 쓰이질 않을 친절을 안긴다. 그런 나를, 산신령 같은 내 친구는 처음에는, '이해가 안 돼~'라고 하다가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로 추임새를 바꿨다.

정신과에서 받은 분석결과에 나는 방어기제로 차단하고 포기하는 전략을 사용한다고 했다. 따라잡지 못할 이상과의 괴리감을 좁히려고 뇌가 사용하는 전략이라고 했다. 마치 그런 거지 심하게 로드가 걸린 CPU를 식힐 길이 없어서 전원 버튼을 여러 번 꺼버리는-

아 그러니까 아무 티를 내지 않은 척하는 것은 나의 모든 시도와 관심 어린 시선이 결코 F1 레이싱의 체크포인트 마냥 스쳐 지나가는 찰나 같은 것으로 생각되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 바람 같은 것.




최근 일주일간은 매일 세 시간 정도 잤고, 지난주는 두 번 걸러 한번 꼴로 푹잤다. 푹 잘 수 있었던 것은 쿠팡 알바가 없는 날이라 가능했던 것 같네.

잠을 못 자게 되면 사람이 심하게 예민해진다. 기분이 업되기도 하고 다운되기도 하는데, 결국에는 피곤이 겹치고 겹쳐서 가시 돋친 장미꽃처럼 되어버린다. 넓은 대로변 저 앞 좌회전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고 신나게 달려서 핸들을 꺾을 찰나 앞 트럭이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길을 잘못 들은 양 오른쪽 깜빡이로 바꿨다. 여전히 정차한 채로. 다들 차선을 바꿔서 지나가면서 클락션으로 한 마디씩 핀잔을 줬는데 유독 나는 20초가량 클락션을 신경질적으로 마구 누르며 괴성을 질렀다.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부끄러움이 늘어난다. 내가 나이 먹으며 제일 잘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은 결국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내일은 한파경보라고 하던데. 하지만 우리 마음은 따뜻하기를, 더운 실내에서 핫초코 한잔 곁들이며 여유를 찾을 수 있기를, 그리고 서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그런 사이이기를.


이 사진만 보면 논밭을 뛰노는 꼬마애와 부잣집 아가씨가 생각난다. (뭐 실제로도 그랬고.)








작가의 이전글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