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주변친구가 셋업 범죄를 당했다.
이란에 혼자 여행을 갔는데 야즈드라는 곳에 가서 황량한 사막도 느껴보고, 쉬라즈 가서 몇천 년 전 페르세폴리스 기둥도 만져보고, 이스파한 들러서 광장에서 인생 사진도 찍고 암튼 재미있게 지내다가 테헤란에서 마지막날을 기념하기 위해 맛집을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이란 청년들이 다가와서 여기 로컬인데, 외국인 친구를 찾고 있었다고 반갑다고 하면서 좋은 파티가 있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원래 여기는 이슬람 국가라서 엄격하게 술을 금하는데 이럴 때 마시는 맥주 한잔이 또 꿀맛이니까 좋다고 갔다. 한껏 마시다가 갑자기 아는 여자 지인들이 있는데 무척 미인이라고 하면서 합석해도 되냐고 물었다고 한다. 내 친구는 뭐 당연히 오케이 했지. 아랍 미녀들이라- 뭐 거기까진 좋았다. 신나게 놀고 재미있게 얘기 나누고. 끝나고 자리를 일어서려는데 계산서를 내밀며 1200불이라고 했다. 비싼 음식을 먹고 비싼 술을 마셨으면 당연히 계산을 해야 한다고 하고. 짠돌이 내 친구가 못 내겠다고 하자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남자들이 둘러싸고 가게 주인도 한패였는지 돈을 내지 않으면 절대 못 나간다고 하고 당장이라도 손찌검을 하려는 듯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 친구 짠돌이는 주머니를 보여주며 죽었다 깨어나도 돈이 없다고 버텼다. 세 시간 동안.
결국 얼마더라 30불인가 50불인가 뜯기고 부리나케 빠져나와서 다시는 이란은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했다.
이러한 사유로 나는 이란을 내 여행 워너비 리스트에서 과감하게 지워버렸다. 최근에 테헤란 지점 직원과 회사 메신저로 업무 이야기며 또 살아온 이야기며 나눌 시간이 있었는데, 친구가 셋업 범죄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너무 애석한 일이라면서 왜 자국의 이미지를 그런 식으로 깎아먹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물론 어리숙하게 보이거나 빈틈이 보인다면 바가지를 씌우는 나쁜 사람은 어디나 존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이 남자 직원은 싱글인데, 급여가 무척 짜다고 했다. 자신의 페이를 오픈하며 조심스레 한국의 급여 수준이 얼마인지 물어보길래 쿨하게 대답해 줬다. 대략 너의 급여의 세배 정도 된다고. 그 직원은 아마도 메신저 저편에서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이제 그만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저 ㅋㅋㅋㅋㅋ 하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지. 내가 받는 급여도 사실 영 거시기하니까. 경력이 10년이 넘었는데.
나에게 정말 보물 같은 여행지를 추천해 줬는데 싱글인 자신은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이곳을 운전하여 방문한다고 했다. 로컬이 아니라면 모를만한 그런 곳. 호수와 고풍스러운 집들이 어우러진, 게다가 자연이 둘러싸인 그곳은 구글지도의 사진만 봐도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나는 지금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이것저것 개인 사정으로 여행을 떠날 수는 없지만 언젠가 꼭 방문할 거라고. 하지만 아내가 승인해 줄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자신 핑계를 대고 꼭 오라고 하는 거였다. 나는 대답했다. 그러면 더더욱 못 가게 할 거라고. 나이를 서로 물어봤는데 그 친구는 20 초반 나는 마흔. 내 아들뻘과 친구 대하듯이 얘기하고 있던 거였다. 문화 종교 나이 생활패턴 모든 것을 뛰어넘어 생각을 주고받으며 자유롭고 어른스럽게.
알다시피 난 부업으로 새벽에 쿠팡배달을 하는데 엘리베이터 광고판 하단에 조그맣게 나오는 세계 뉴스에 속보가 떴다. 이란에서의 시위가 격화되어 사망자가 15,000명이라는, 시위대를 향해 진압군은 조준 사격을 했다고도 했다. 열심히 배송을 하다가 다리가 풀려서 휘청였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지진이 난 것도 아니고 쓰나미로 도시가 잠긴 것도 아닌데, 만오천 개의 불꽃이 꺼졌다니. 출근했더니 그룹 전체 메일로 이란과의 모든 통신수단이 끊겼고, 간헐적으로 다른 공항 직원과 비상연락을 하고 있다고 했다.
돌아버리겠다.
내 친구 아라쉬가 사내 메신저에 들어오지 않은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그리고 비공식 인터넷 뉴스에서 오와 열을 맞춘 검은색 바디백이 끝없이 늘어져 있는 영상을 봤다. 어떤 바디백 옆에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눈물범벅인 채로 탈진해 누워있었다. 누가 망자인지 모르는 그런 모습으로-
돌아버리겠다 진짜.
그가 무사했으면 좋겠다.
Arash라는 그 친구 이름을 검색해 봤더니 آرش 아라쉬. 공교롭게도 희생, 용기, 자유를 갈망했던 페르시아 신화 속 영웅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