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4

by 밤호랑이
찰만 생대패. 참 좋았다. 절제된 사투리를 구사하던 서버도.

우리 아이들을 참 예뻐하는 내 친구 K. 그를 안 지도 30년이 되어간다. 그와 나는 상계동 토박이인데 결혼 후에 직장문제로 영종도로 이사 온 나를 만나러 공항버스를 타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자주 와준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같이 걷던 내가 문득 이런 질문을 했다


"K야 너는 지금 무엇이 있으면 더 행복할 것 같아?"

"내가 사랑할 연인이 있었으면 좋겠어 다른 것은 내가 노력해서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은 내 마음 같지 않네"

"정말 그러면 행복하겠어? 돈도 집도 다른 아무것 없어도 사랑하는 이 한 명만 옆에 있으면 행복할까 그걸로 다 된 거야? 난 너처럼 용기 있고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하겠어. 좋은 대학과 직장을 들어가면 연인을 만나면 결혼을 하면 돈을 벌고 집과 차를 사면 그러면 행복한 걸까 계속 문제가 발생하고 더 많은 것에 욕심이 나지 않을까 와 같은 끝없는 질문으로 내 안으로 깊숙이 가라앉게 돼"


돌아보니 나의 삶의 여정은 늘 그런 식이었다. 불확실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 안정을 찾으면서도 불안정한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나 자신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나날들.




초록잎이 푸릇푸릇하던 어여쁜 장미 아가씨의 시든 꽃대를 잘라주고 새로운 꽃망울 틔우기를 기다렸건만 하루하루 시들어갔다. 영양분을 공급하고 습도를 조절하고 햇빛과 바람을 맞혀줘도 무용지물이었다. 엽전체가 누레지고 누가 봐도 생명의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내가 업어온 식물의 당근 판매자-원주인에게 슬픈 소식을 알렸더니 그는 단번에 일조량이 부족한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나름 신경 썼다고 생각했는데 모자랐던 모양이다.

그녀를 내 사무실 창가에서 급히 자택으로 옮겼다. 아무래도 사무실은 춥고 내 손길이 못 미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못 보던 화분이 있다면서 눈이 커진 아이들에게, 너무 시들어버려서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고 말해주었다.

아파서 응급실에 데려온 거네?라는 큰 딸의 말에 잠시 멍했다. 내 응급실은 어디였을까 내가 정말 아팠을 때 응급실을 찾았던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어젯밤 어김없이 걱정 어린 눈으로 잎을 살펴보는 간절한 나에게, 장미 아가씨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만의 속도로 천천히 피워내고 있다고. 적절한 때가 되면 난 다시 살아날 거라고.


뭉클한 마음을 뒤로하고 집안일을 하던 내게 둘째 아이 역시 아빠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내 손을 잡아끌며 서프라이즈를 했다. 꽃망울이 나왔다며 매만지는 모습 역시 뭉클하다.

삭막하고 죽음의 그림자로 정신 못 차리던 나에게 세상은 뭉클함으로 답한다. 죽지 말라면서. 때가 있으니까 너만의 속도로 꾸준히 걸어가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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