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직동》, 김서정 글, 한성옥 그림, 보림(2003) 그림책에세이
그림책 《나의 사직동》의 표지에는 담쟁이덩굴이 벽을 가득 메운 이층집이 그려져 있다. 개성 있는 그림 스타일보다는 사진이라고 착각할 만큼 사실적인 그림으로 표현 되어있다. 마치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은 마음 같다. 사직동에서의 추억이 담긴 그림책을 보며 오랜만에 할아버지 옛집을 떠올렸다.
지금은 도로가 되어버려 사라진 집. 2017년 가을, 추석 연휴에 고향에 갔을 때 엄마가 골목 앞 굴다리 너머 할아버지네 집이 도로가 된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도시 같으면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나 큰 건물이 되겠지만, 여기는 시골이니 언제든 오면 있을 줄 알았다. 그 당시 90세가 넘은 할아버지는 인근의 대도시인 광주광역시의 삼촌네 근처 아파트를 얻어 살고 계셨다.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도 나에게 할아버지네 집은 굴다리 옆집밖에 없었다. 곧 사라진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확실한 거냐고 여러 차례 물어봐도 대답은 똑같았다.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서울에서 살고 있던 나는 매년 명절에만 오기 때문에 다음에 왔을 때는 그 집이 없을 가능성이 컸다. 언니를 불러서 할아버지네 집에 가보자고 했다. 내 이야기를 듣자, 언니도 바로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네다섯 살쯤 지금 집으로 이사 왔다. 오래된 한옥을 헐고 다시 지어 성인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쭉 지냈다. 집 앞 골목에서 직진해서 굴다리만 지나면 바로였던 할아버지네 집은 우리 집이 위기에 놓였을 때 가는 도피처 같은 곳이었다. 어렸을 때 명절에 친척과 놀고 있을 때 전기가 나가는 바람에 어두운 틈을 타 작은 쥐가 내 신발에 숨어버렸던 적이 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 신발을 신는 바람에 발바닥이 꿈틀거려 깜짝 놀랐다. 동네 떠나가라 울면서 어른 슬리퍼를 신고 헐떡이며 할아버지네로 뛰어갔다. 오래된 우리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 몇 달간도,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도 겨우내 우리 가족이 할아버지네 방 한 칸에서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고향에 살면서 굴다리 옆집에 덩달아 쌓인 추억이 가득하다. 학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쓴 편지를 보내는데, 나는 가까워서 우표를 붙일 것도 없이 몰래 방바닥에 던지고 후다닥 집으로 달아나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잡았던 닭의 목이 문 사이에 끼어도 죽지 않고 뛰어다니는 바람에 닭목을 먹지 못하게 된 일도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한참 지났기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다.
없어질 줄 알았으면, 몇 번이고 다시 들어가 볼 걸. 언제든 있을 줄 알고 그 가까운 곳을 참 오랜만에 갔다. 어두운 갈색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는 개집이 있었다. 오랫동안 개가 있던 흔적이다. 반대편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두 칸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면 큰 돌로 둘러싸인 정원이 나온다. 그곳의 돌을 딛고 혼자 두발자전거 타는 법을 익혔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화장실을 따라 조금만 더 걸어가면 메주를 걸어놓던 방이 있었다. 할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엄청 뜨끈뜨끈했던 기억이 있는데, 늘 메주 냄새와 마른 고추 냄새로 가득했다. 집에 사람이 많아서 어린이들이 갈 곳이 없을 때만 가끔 들어갔다. 다시 안쪽 마당으로 들어가면 소가 살던 외양간, 닭장이 있었다. 또 그 옆에는 가마솥이 있는 옛날 부엌과 창고가 있었는데, 빛이 들어갈 틈 없이 새까맣게 그을린 벽에는 더 이상 쓰지 않는 농기구들이 기대져 있었다. TV가 있던 안방에는 항아리 안에 사탕이 있어서 가끔 몰래 빼먹었다. 복도 끝 방은 이모들이 쓰던 방으로 오래된 책이나 골동품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곳에서 엄마가 결혼 전에 쓰던 천가방을 찾아서 지금껏 쓰고 있다.
우리 집 마당보다 두 세배는 넓어서 갈 때마다 탐험가가 된 기분이었다. 걸어 다닐 때마다 끼익-끼익- 소리 나던 마룻바닥, 잡초 가득한 텃밭의 감나무, 석류나무. 오래된 창고와 거미줄 가득한 뒷마당까지. 갈라진 시멘트 바닥 꾹꾹 누르며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걸어 다니며 구석구석 사진으로도 남겨두었다.
《나의 사직동》에는 살던 집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함께 등장한다. 어느 날 도심 재개발이 된다는 현수막이 걸리면서 아파트로 바뀌고 동네 풍경이 바뀌는 과정이 나온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자주 가던 떡볶이집이 부동산으로 바뀌고, 함께 살던 개 진돌이는 친척 집에 가게 된다. 오랜만에 간 동네에서 높은 쇠 담 뒤로는 살던 집도 없고, 가위바위보 하며 올라가던 백 계단도 없고, 감나무도 없었다.
공간이나 장소와의 이별은 물건과의 이별보다 후유증이 크다. 슬픔도 슬픔이지만 그 장소를 다시 볼 수 없다는 현실이 큰 상실감으로 다가온다. 다시 돌아온 동네에는 살던 사람 대부분 떠나고 없다. 널찍하고 반듯한 길이 생겨도 가위바위보를 하며 계단을 올라가지는 않는다.
예상했던 대로 할아버지네 집은 그날 가본 게 마지막이 되었다. 다음 명절에 갔을 때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가, 또 그다음에는 흔적도 없이 모조리 흙바닥이 되었다가, 마지막엔 강변 옆 넓은 도로가 되었다. 굴다리 안의 골목은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변하지 않고 대부분 그대로였다. 오래된 돌담집도, 구멍가게도 다 남아있는데 굴다리 옆에 있던 집만 사라졌다. 그 집이 사라지는 동안 시모임에 가게 되었던 나는‘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마음 한구석에 담아둔 할아버지 옛집의 기억을 꺼내 처음으로 시를 썼다. 이 시를 할아버지에게 보여줬더니, 놀라서 내가 쓴 게 맞냐면서 계속 물어봤다. 나는 큼지막한 글씨로 써서 할아버지에게 전해주었다. 엄마에게도 보여줬더니 옛날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나의 사직동》은 어릴 적 살던 동네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을 그림책에 담았다. 나는 할아버지 옛집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을 굴다리 옆집이라는 시와 이 글에 담았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희미해지던 기억을 덧칠했더니 조금 더 선명해졌다.
굴다리 옆집
김희라
마룻바닥에 앉아보는 대신
발바닥으로 꾹꾹 눌러가며 인사했다
내일이면 나는 떠나는데
최대한 이곳의 공기를 코로 들이마시고
거미줄이 있는 공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그을림이 있는 가마솥
구석에 놓인 의자
그 뒤의 쓰지 않는 농기구들
그 앞마당의 석류나무 감나무
그 옆의 고추장이 담겼던 장독대
원래 있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버려지거나 누군가가 갖거나
어딘가에 가게 될 것이다
도로가 되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였는지
떠오르게 되지 않을 때
다시 발바닥으로 눌렀던 기억으로 기억하겠다
2018. 05. 12.
* 이 시는 분량 / 글의 일관성 상 에세이 책에는 어울리지 않아서 수록되지 않았다.
김희라
서로의 다름이 잠재력이자 가능성이라고 믿는다. 마흔 전 탈서울을 외치며 마흔을 한참 남겨두고 2024년 초 서울에서 원주로 이주했다. 그림책 도시 원주에 와서 그림책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요즘은 지역의 경계에 있는 반 원주 사람 ‘원반인’으로 살며 회사 월급 대신 독립적으로 먹고사는 생존 실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