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불안》, 조미자 지음, 핑거(2019)를 보고 쓴 그림책 에세이
30대 초반이 될 때까지 나는 지금껏 아홉 개의 직업을 거쳤다. 동시에 다른 일을 하며 길게는 3년 정도 했고, 짧게는 1년 미만으로 일했다. 그중 다른 직업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점이 된 계기도 여럿 있었다. 직업을 자주 바꾸는 나에게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최근에 와서야 보이는 긍정적인 반응이다. 삐딱한 시선으로 ‘끈기가 없다’라거나 ‘특이하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람들이 내게 던지는 말이 가끔은 나도 모르는 진실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내 의지로 선택한 적도 있지만,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조직에서 이상한 부적응자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분야를 바꾼 적도 있기 때문이다.
이직이나 전직을 시작할 때는 이력서부터 작성한다. 직업을 바꾸는 과정에서 대기업부터 스타트업, 비영리단체부터 공공기관까지 다양한 형태의 조직을 경험했다. 나의 몰랐던 점을 발견하며 성장할 수 있던 점은 좋았다. 그럼에도 조직 형태를 여러 차례 바꿔도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독립적으로 일하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감에 당장 눈앞의 상황을 피하려 임시방편만 세웠다. 자신감에 차서 들어갔던 게 아니라,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아서 회사에 마치 기생하듯이 살았다. 조직이 원하는 모습에 맞춰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몇 년 전부터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회사나 상사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대신 나의 가치관과 맞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살고 싶은 방식으로 삶의 장소를 정하고 싶었다. 이상과 표준의 함정에 빠져 보통의 일상을 영위하기도 어려운 서울에서 평생 살고 싶지 않았다. ‘마흔 전 탈서울’을 외치던 나는 조금 더 빨리 시행착오를 겪기로 했다. 미리 겪은 경험을 기반으로 다음을 도모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약 1년간의 준비 과정과 아홉 번째 직업을 무사히 마무리한 후, 드디어 원주에 오게 되었다. 원주에 오기로 선택한 이유는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독립’을 통해 살고자 하는 삶에 가까워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정 사업에서 벗어나 삶의 가치를 일상적 실천과 연결하는 사업으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필요했던 건 ‘탈서울’이라는 목표에 포함된 경제적 독립과 조직으로부터의 독립이었다. 회사를 아무리 옮겨도 월급은 늘 비슷했고, 그 사이 서울의 집값은 두 배 넘게 뛰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서울에 사는 집을 빌리기에 충분하지 않아서 부모님의 돈으로 전세 보증금을 충당했다. 조직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누군가 만든 틀에 맞춰 나의 가능성을 재단하며 현실에 안주했다. 인간의 삶에서 온전한 독립을 하는 게 어른이 되는 것이라면,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임시적인 상태에 머무르기만 했다.
한 분야에서 계속 경력을 쌓지도 못하고, 서울에 살면서 마음 놓을 곳이 없던 나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하기만 했다. 그 불안은 “때때로 나를 어지럽게 하고, 때때로 나를 무섭게” 만들었다. 매번 그런 상태였던 것도 아닌데 불안이 사라진 상태였을 때조차 언제 불안이 나타날까? 하면서 다시 불안을 불러냈다. “궁금하긴 했지만, 알고 싶지 않았던” 그 불안을 조미자 작가의 그림책 《불안》을 읽으며 천천히 만나보기로 했다.
그림책 속 주인공은 눈을 질끈 감고, 기다란 끈을 잡았다. 그 끈을 잡으니 아주 큰 ‘너’를 만났다. 무섭기도 하고,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고, 가끔은 후회와 자책도 했다. 아직 오지 않았는데도 머릿속에 가득 찰 때도 있었다. 잠깐 멈춰 서서 후- 심호흡하고, 다시 끈을 잡아당겼다. 어라? 생각보다 작잖아? 내가 어딜 가든 따라오는 이 감정을 보다 보니 꼭 안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견디기 어려워 피하기만 했는데, 지나온 삶을 그대로 바라볼수록 불안 덕분에 해낸 일들도 떠오른다.
감정을 ‘긍정’ 혹은 ‘부정’이라는 이분법으로 정확히 나누기는 어렵다. 똑같은 감정도 부정적일 때가 있고, 긍정적일 때가 있었다. 내 안의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과거의 나를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 정도면 충분히 잘 해냈어’라고 말이다.
어릴 때 배웠던 자전거가 생각났다. 자전거를 타고 중심을 잘 잡으려면 오로지 두 바퀴로만 중심을 잡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뒤에서 잡아주게 되면 혼자서 설 수도 없고 두려움이 계속되니 나도 모르게 바퀴를 굴려야 할 발로 땅을 딛어버리게 된다. 동력을 잃은 자전거는 그 자리에 계속 멈춰있다. 독립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립된 삶을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진정한 독립은 내 삶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과 적당한 거리에서 의지하고, 스스로 서는 힘을 내 안에서 찾는 과정이다.
불안 속에 나를 부정했던 긴 터널을 지나 밝은 빛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처음으로 혼자의 힘으로 집도 구하고, 운전 면허까지 취득했다. 원주에는 가족도, 직장도 없는 대신 올 때마다 신기해하며 나의 도전을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덕분에 원주에 오겠다는 결심도 했고, 용기도 얻었다. 처음 만난 나에게 환대의 마음을 전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에 이를 수 없었다. 시간이 더 지난다면 언젠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온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건넬 수도 있지 않을까? 예측할 수 없는 하루와 수많은 선택이 반복되며 여전히 불안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며 조금씩 나만의 균형을 찾는 중이다. 큰일을 기대하고 실망하기보다는 작은 일도 정성스럽게 해내며 나다운 삶에 가까워지고 있다.
《불안》을 읽으며 독립의 과정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는 여러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멀리 보고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을 차례다. 나의 선택에 따라온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매일을 맞이하고 싶다. 여전히 내 옆에 있는 불안이 답한다. 생각보다 더 ‘괜찮아!’라고.
김희라
서로의 다름이 잠재력이자 가능성이라고 믿는다. 마흔 전 탈서울을 외치며 마흔을 한참 남겨두고 2024년 초 서울에서 원주로 이주했다. 그림책 도시 원주에 와서 그림책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요즘은 지역의 경계에 있는 반 원주 사람 ‘원반인’으로 살며 회사 월급 대신 독립적으로 먹고사는 생존 실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