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돌아보기
이렇게나 많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니, 고작 1년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 나를 위해 새해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입춘을 핑계로 그간의 기억나는 순간을 마구잡이로 정리해본다. 왜? 나는 잘한건 빨리 까먹고, 못한것만 야무지게 기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불완전한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원주에 오면서 나에게 소속을 부여하겠다는 대담한 결심과 달리, 사람들이 보는 (먼지만큼의) 용기와 실천력 있는 희라의 모습과 달리… 나는 정말 쫄보중의 쫄보다. 어떻게 원주에 온 거야? 이 와중에 어떻게 새로운 분야인 농업에 뛰어든거야? 뒤돌아서서 과거에 해낸 일들을 보고 있자면, 두 다리가 덜덜 떨릴 뿐이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것 같은 두려움과 동시에 내가 새롭게 알아낸 감각을 떠올려본다.
원주에 온 첫해에는 과거의 경험과 새로운 이유를 덧붙여 일시적 노동을 하며 1년을 보냈다. 서울 행사 기록, 프로그램·청소년 캠프 모니터링, 예술 교육 보조강사, 카페 파트타이머, 일일 책방지기, 원인동과 명륜1동 가구주택기초조사 요원, 타로마켓 시로 다가감 기획 운영, 자료집 글 작성 및 편집 보조, 행사 스태프 등 세어보니 정말 많다!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만 가득 떠오른다. 정말 운이 좋았지. 그 당시에는 온전히 깨닫지 못했다. 욕심과 조급한 마음, 이 일이 다음으로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새로운 지역에서 잘 살아낸 나에게 제대로 된 칭찬 한 번 하지 않았다. 도와준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면서도,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벽 앞의 심정이 새어나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정서적 안전망을 경험하지 못하면 조금만 못해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으로 새로운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내게 주어진 능력과 상황이 동일하다면 어떤 일을 잘 해낼지를 결정짓는 건 ‘불안’관리 같다.
원주와 서울을 오고가며 반 원주사람, 원반인으로 꼬박 1년을 살았으면서도 출발지와 도착지가 뒤바뀌면서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되었다. 바뀌기 전까지는 절대 모를 진실이었다. 새롭게 자리잡은 지역에서 버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노동이다. 가진 자산이 나밖에 없으니, 건강하게 잘 먹여 살려야 하고, 멈추지 않는 시간 속에서 통찰과 성장의 기회를 주는 꼭 필요한 일이다.
좋아하는 일 주변을 맴돌며 할 수 있는 일을 해오던 나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무소속의 1년. 그간 새롭게 깨닫게 된 건 아무리 하고 싶은 일도 돈 버는 노동이 되면 그 자체로 무게감이 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스트레스나 압박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회사를 벗어나면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원주에서 어떤 일을 하며 먹고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한층 더 깊어져만 갔다.
기억나는 순간 중 하나는 11월에 질의응답 기록을 돕기 위해 갔던 자리에서 나를 소개하던 시간이다. 그때의 나는 아무 소속도 이름도 없고, 키워드가 또렷한 일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10년 넘게 소속 안에서 나를 설명하는게 익숙했던 나에겐 마음이 정말 쪼그라들었을 때였다. 그래도 그 멋진 사람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독립(적인 삶) 기획자’라고 나를 소개했다. 그 뒤에 어떻게 말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중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내가 원주에 오기까지 고민의 과정, 지금까지 겪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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