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통념이 나와는 맞지 않을 수 있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시작을 해놓고 이 주일째 끝맺음하지 못하고 있는 글이 있었고, 하루종일 집에 있던 탓에 온종일 먹은 설거지도 해야 했고, 분리수거 바구니도 꽉 차 있었다. 그러나 왠지 모두 하기 싫었다. 하루종일 회피 중이었다. 계속 누워있다 보니 점점 더 하기 싫었다.
생산대신 소비로 회피했다. 그나마도 도움 될만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라며 정당화했다. 내년 부동산 트렌드 유튜브 네 개를 봤다. 다년간의 개인적 데이터로 가장 신뢰하는 교수님과 인플루언서기에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빅데이터로 트렌드 분석한 영상을 봤다. 요즘 F&B 메가트렌드가 페어링이라는 점을 알았고, 내년에도 아식스와 살로몬의 인기가 지속될지 파헤쳐보는 영상도 봤다. 이후 여배우들 피부관리 루틴, 장성규의 아침 먹고 가 카더가든 편, 마이크로바이옴식단, 벌거벗은 세계사 삼국지편 2개를 보고 초한지 편까지 봤다. 사실 이것보다 더 봤다. 2배속 사랑합니다,,
그러다 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꼬북칩 콘스프맛과 맥주가 먹고 싶었다. 꼬북칩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최애 과자다. 아니 최악의 과자다. 나의 하루처럼. 브런치에서는 글쓰기가 근육이라며 글 올리라고 잊을만하면 계속 알람이 오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데다가 식단 관리 해야 하는데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 꼬북칩과 맥주라니. ‘차라리 잠을 자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금세 생각을 고쳐먹었다. 요즘하고 있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제와 실행에 대한 이야기다. 절제를 하느니 많은 것을 실행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꽤 오래 했고 이제는 그에 확신을 가져가는 중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한테는 그게 맞았다. 요즘 탄수화물과 지방을 절제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모든 일에 동기부여가 떨어진다는 점을 인지하게 됐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참고 절제하다 보니 다른 일에도 의욕적이지 않게 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화력이 떨어졌다.
돈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카드값과 부동산 때문에 허덕이는 중이라 커피도 줄이고, 외식도 줄이는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허슬에 악영향을 받았다. 허슬을 하려면 돈을 쓰는 편이 좋았다. 집에 있는 것보다 카페 가서 하는 게 낫고, 요리할 시간을 줄여 외식을 하는 게 낫고, 홈트보다는 PT 받는 게 제일 좋다. 이 모든 것에서 절약을 하려면 의지를 발휘하기 위해 머리나 마음 에너지를 더 써야 한다. 즉, 돈이 차지할 자리에 내 의지를 욱여넣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게 조금씩 어려워졌다. 동기부여가 떨어졌고 삶의 만족도도 떨어졌다.
이를 인지함과 동시에 동기부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어떻게 하면 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까? 다수의 책과 영상을 보니 몸을 움직이면 마음도 따라온다고 했다. 의심이 많은 나라서 직접 실제 삶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하고자 하는 일과 관계없이 그냥 몸을 움직였다. 책이나 영상에서 말했던 것처럼 운동을 하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했다. 그랬더니 무기력한 마음이 사라졌다. 다음 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부자들이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라고 하는 걸까? 몸을 움직이니 의지가 따라 올라왔다.
물론 절제를 잘하면서도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을 안다. 그게 본인에게 맞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그러나 나라는 인간의 의지는 너무 나약했다. 의지에도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일이어서 허슬에 활용될 에너지도 갉아먹는다. 그래서 나는 절제하지 않고 욕망을 채우면서 더 많은 일을 도모하는 편이 맞다. 사실 힙합에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 허슬은 계속 생산을 해내면서 성공에 다가가는 코드고, 그렇게 번 돈을 아끼고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플렉스를 하며 더 많은 돈을 벌고자 동기부여한다. 플렉스와 허슬은 생산과 발전의 선순환 메커니즘이다.
운동에서도 그렇다. 많이 먹고 많이 운동을 하면 흔히 건강한 돼지가 된다고들 한다. 사실 돼지라고 하지만 근육이 붙어서 더 좋은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근육량을 늘리고 체지방을 줄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근육은 조금만 방심해도 사라지기 십상인데 소식하면 근육이 빠진다. 힘없어서 운동도 안 가게 된다. 탄수화물과 지방을 절제하다 보면 어쩌다 한 번씩 폭식을 하게 돼 손실된 근육이 지방으로 채워지기에 안 좋다. 평생 절제할 수 없다면, 그리고 절제하느라 동기부여가 떨어진다면 나는 많이 먹고 많이 운동하는 편을 택하고 싶다.
그래서 이번에도 생각을 고쳐먹었다. ‘꼬북칩과 맥주를 먹자. 먹으면서 반드시 글을 올리자. 그리고 사 오는 김에 분리수거도 하고 오자. 그전에는 일어난 김에 설거지도 하자.’라는 액션플랜이 바로 자동적으로 세워졌다. 그리고 그 계획을 그대로 모두 실행해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게다가 내일은 운동까지 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너무 생산적이어서 마음에 드는 하루로 마무리하게 됐다. 절제하느라 그냥 잤으면 느끼지 못했을 뿌듯함이다. 건강한 돼지이면서 건강한 허슬러가 되어 조금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