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즐겨 듣는 힙합 아티스트가 몇 있다. 그중 하나는 'TEAM NY'다. 팀 엔와이, 팀 녹양으로 읽는다. NY는 뉴욕이 아니고 녹양인데 녹양은 의정부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1호선 녹양역도 있다. 의정부시 녹양동에 사는 동네 친구 세 명이 모여 만든 팀이라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2000년대 생인 이들은 본인들이 태어나지도 않은 시대의 음악을 한다. 90년대 웨스트 코스트 힙합 음악을 해서 주목받았다. 쉽게 말해 90년대 인기 장르인 김건모 레게나 이정현 테크노 같은 장르를 하려고 나온 요즘 아이돌 느낌이겠다. 빈티지를 좋아하는 내게 매력적이었다.
힙합에서 지역의 의미는 특별하다. 미국에서 시작된 터라 땅덩이가 커서 그런지 지역색이 확실하다. 동부(East coast)는 드럼 비트의 투박한 붐뱁이 특징이며, 서부(West coast)는 멜로디와 하모니를 중심으로 한 지펑크(G-Funk)로 유명했다. 음악은 환경의 영향을 받았다. 동부는 회색 빌딩 숲, 콘크리트 느낌의 뉴욕을 기반으로 하기에 다소 어두우면서 거칠고 투박하며 멜로디가 없다.(대표 아티스트: 비기, 나스, 제이지) 반대로 서부는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햇살과 해변이 있기에 청량하고 멜로디컬한 음악이 많았다.(대표 아티스트: 투팍, 닥터드레, 워렌G) 이 외에도 남부는 전자음악인 트랩이 유명하다.(대표 아티스트: UGK, TI, 어셔)
https://youtu.be/hI8A14Qcv68?si=BWX9R-b4CRaTDSS4
https://youtu.be/jEJa7t4ST0I?si=9sZps81EUmVlVZn1
래퍼들은 전통적으로 고향을 음악에 담고 고향을 알리려는 노력을 해왔다. 고향을 이름으로 한 TEAM NY도 힙합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재미있는 것이 팀 이름에 NY가 있어서 뉴욕과 동부힙합을 떠올리기 쉬운데 정작 이들이 하는 음악은 서부다. 알고 노린 것 같다. 위트있다. 나는 비기를 중심으로 한 이스트 코스트 힙합을 더 좋아하지만 TEAM NY가 요즘식으로 풀어낸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도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옛날 추억이 떠오르는 듯한 아련한 사운드가 좋았다. 녹양, 북쪽이라 춥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도시였나보다.
https://youtu.be/_E2BqfEci44?si=pWeA5hGgCvJ2jHPo
10월 말, 이들의 첫 정규 앨범이 나왔다. 요즘 출퇴근길과 헬스장에서 맨날 듣고 있었고 괜찮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유튜브에 이들이 출연한 라이브 공연을 보게 됐다. 신규 발매된 앨범 수록곡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 <Watch out(feat. 로스)>이어서 인스타그램 홍보글을 보고 바로 그날 보러 갔다. 틈새 지식으로, 피처링한 로스는 실제로 웨스트 코스트 LA출신이고 20대 초에 찐 갱스터 활동으로 감옥에 다녀온 경력(?)이 있다. 현재 개과천선해서 한국형 서부힙합 대표인물이 됐다. 이 역시 TEAM NY가 웨스트 코스트 음악에 진심임을 느낄 수 있는 대목 중 하나다. 유튜브에서 라이브도 곧잘 했다. 다른 리스너들의 평가도 궁금해서 댓글을 봤다. 좋다는 댓글 일색이었는데 악플도 있었다.
아니, 음악에 대한 취향과 실력에 대한 평가는 개인별로 다르다고 쳐도 이렇게 댓글을 달 수 있나? 표현이 기분 나쁠뿐더러 내용도 알맹이가 없고 그저 뇌피셜 인상비평인 데다가, 얼평(얼굴평가)까지 하다니! 녹양분들 비주얼이 수려하기보다는 참 친근한 스타일이긴 하지만 ㅎㅎㅎ 말도 안 되는 댓글이었다. (심지어 흰 무지티에 선글라스 끼면 X세대 느낌나고 힙해보임 ㅎㅎ) 이들의 음악을 좋게 들은 사람의 취향까지 뭉개버린 느낌이었다.
순간적으로 반박할 말들이 선명하게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왔지만 참았다. 평소 불만이 있어도 댓글까지 달아본 적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시인 하상욱의 말이 뇌리에 스쳤다. 몇 년 전 한 팟캐스트에서 악플에 대해 그가 이야기한 것이 인상 깊었다.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악플보다는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선플을 많이 달고 다니라는 이야기였다. 그에 공감한 나는 그 이후 싫은 유명인에 대한 생각은 잘 꺼내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는 싫어하는 것을 욕하는 게 즐겁겠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좋아하는 것이 나를 즐겁게 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싫어하는 사람을 욕하지 말고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지지, 적극 소비를 더 했으면 좋겠어요.
하루 뒤에도 그 댓글이 여전히 생각났다. 그래서 그 페이지를 다시 방문했다. 그랬더니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분들이 악플러에게 반박을 하거나 비난하는 댓글을 많이 달아놨다. '우리나라 인터넷 문화도 많이 성숙됐군.'이라 생각하며 나도 용기를 내 처음으로 악플에 반대하는 댓글을 달아보았다. 미약한 댓글이지만 좀 더 나은 세상이 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댓글이었는데 다는 데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하루 지나 들어가 보니 내 댓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신 분도 네 분 있었다.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개나소나 드립에 똑같이 개나소나로 맞받아친 나 자신이 만족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악플과 댓글, 자유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