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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Feb 20. 2024

교육 담당자의 종말


회사에서 HRD를 담당하고 있다. HR에 관련이 없는 사람들은 HR을 HRM(채용, 평가, 보상 등), HRD(교육 등 직원 성장 관련), OD(조직문화) 등으로 구분해서 부르는 것을 전혀 모르기도 한다. 하는 일을 빌려 내 일을 더 쉽게 설명하면 '교육 겸 조직문화 담당자'다. 일한 지는 만으로 11년이 넘었다. 연차로는 이제 12년 차다. 교육공학을 전공한 데다가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외길을 걷고 있다.


얼마 전부터 조직 내에서 역할이 달라짐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꽤 오랫동안 ‘교육 담당자’로 불리다 ‘조직문화 담당자’라는 타이틀이 추가 되면서다. 내가 속한 팀의 이름이 ‘교육팀’, ‘인재육성팀’ 에서 ’피플팀‘, ’컬처팀‘, ‘조직문화팀’ 등으로 바뀌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한 탓이겠다. 업에 몸담은 지 10년이 넘어가고, 30대 후반에 접어들고, Chat GPT도 나오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특히 직업의 미래를 그리게 되는데, 12년 차 교육 담당자로서 내 직업의 미래 전망을 하자면 HRD의 R&R 중 교육 담당자는 없어질 것 같고 조직문화 담당자만 남을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기업교육 트렌드에 업스킬링(Upskilling)과 리스킬링(Reskilling)이라는 키워드가 나온다. 말장난 같긴 하지만 리스킬링(Reskilling)은 직무변경 후 새로운 스킬을 익히는 것이고 업스킬링(Upskilling)은 현재 하고 있는 업무 스킬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직무교육이라 불리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리스킬링(Reskilling)의 경우는 기초적인 부분은 교육 담당자가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변하지 않는 근본, 기초는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스킬링(Upskilling)은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개인적으로 이는 교육 담당자의 손을 떠난 지 오래라고 느낀다. World Wide Web 시대 이전에는 교육 담당자가 커버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특히 4차 산업혁명 이후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느끼듯 세상은 급격히 변해가고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겠고 새로운 기술은 계속 나오고 트렌드는 자꾸 변한다. 내 앞길도 모르겠는데 다른 직무에서 필요한 교육을 어떻게 일개 교육 담당자가 알 수 있을까? 사내에 직무교육을 위한 교육R&D가 있거나(삼성, LG, SK, 현차급 대기업 아니면 현실적으로 불가능) 현업을 겪고 직무이동으로 교육 담당자가 된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열정부자라도 불가능해 보인다.


더욱이 회사에는 한 가지 직무만 있는 게 아니다. 한 회사에도 많게는 두 자릿수의 직무 종류가 있을 수 있고 같은 직무여도 맡는 일은 미세하게 다를 수 있다. 직무가 이렇게나 다양한데 전혀 다른 직무에 종사하는 교육 담당자라는 사람이 각 직무에 필요한 직무역량을 빠삭하게 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교육 담당자가 없는 회사도 있고 있어도 그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 직원이 1000명인 회사에서도 고작 2~3명 정도뿐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업스킬링을 교육 담당자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위험한 일이다. 교육 담당자가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결국 각자 본인에게 필요한 교육은 스스로 찾아서 들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본인 커리어에 관심이 지대한 일부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본인의 성장을 위해서 본인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모르는 직원의 수가 상당하다는 점에 있다. 10년 가까이 1년에 한 번 정도는 직원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하냐고 묻는 교육 요구조사를 실시하면서 놀란 지점이다.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성장은 하고 싶지만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는 것도 있겠고, 실질적으로 회사와 개인적 삶을 분리해 회사 일에 관심이 없어서 일 수도 있겠다.


이런 직원들을 위해 교육 담당자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교육 담당자가 교육을 추천해 준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효과가 있을까? 물론 기획한 교육 프로그램 전체 구성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강사가 매우 뛰어나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상 누구나 만족할만큼 정말 좋은 강사, 정말 좋은 콘텐츠를 만나는 것은 확률상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좋다, 안 좋다, 효과가 있다, 없다를 판단하는 기준이 개인별로 너무 다르다는 데 있다. 이는 개별 학습자의 선수지식과 교육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케팅 관련 특강을 할 경우 20년 이상 마케팅 분야를 경험한 부장급과 대리급 직원의 선수지식은 크게 다를 것이다. 같은 특강 강사의 강의를 듣고 대리는 좋다고 평가, 부장은 뻔한 이야기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러면 직급에 따라 교육을 진행하면 어떻냐는 물음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웬만한 거대 대기업이 아니고서야 직무별로 나누어 교육 하는 것도 겨우 하는 게 현실이다. 비용의 한계 때문이다. 그리고 직무별/직급별 교육을 한다고 쳐도 그 안에서도 개별 선수지식이 다르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개별 학습자의 선수지식은 정교하게 고려되기 어렵다. 현실은 1:1 맞춤 강의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교육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교육 효과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서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면 교육에 대한 만족도도 높고 효과도 좋을 것이다. 심지어 지루한 방식으로 전달해도 집중을 잘 할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부족하고 필요한 점을 모르고 있다면 아무리 비싸고 좋은 교육을 듣는다고 해도 그것은 지루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은 필요에 의해, 스스로, 자발적으로 했을 때 가장 효과가 좋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은 이미 모두 경험했고 모두 공감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개인에게 필요한 교육을 인지 또는 선택 또는 추천하기 위해 ‘리더십 360도 다면진단’, ‘동료 피드백’ 같은 역량진단도 실시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진정으로 성장이 일어나려면 나에게 필요한 내용을 스스로 인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합한 교육을 찾고, 직접 선택해서 들어야 한다. 그래서 요즘 선진 기업들이 자기 계발비를 지원하고, 사내 학습 조직을 만드는 등 자기주도학습을 권장하고 학습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이는 직원들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회사를 경험해 봤지만 회사는 대체로 직원들을 잘 믿지 않는다. 직원에게 자율적으로 맡기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아직 많은 회사가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권장하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나는 HRD의 근본 목적인 직원의 성장을 위해서는 ‘자기 계발 지원’이 제일 현실적인 성장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직원들이 학습과 성장에 갈피를 못잡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여기에는 주체적이고 현명한 개인이 되는 것을 지원해 주는 다양한 방법론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런 필요를 따져볼 때 HRD에서 교육담당자 Role은 조직문화에 흡수되어 ‘학습문화 조성자’ 또는 ‘성장을 위한 동기부여 콘텐츠 제공자’ 또는 ‘자기 인식 서포터’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면 자연스레 조직문화 담당자로서의 역할이 커지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 또한 만만치 않다. 조직문화 담당자 1인~약간 명이 전체 기업의 조직문화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많은 조직문화 전문가들도 CEO가 조직문화 변화의 선봉장이 되어야 겨우 조직문화에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선진 대기업, 스타트업을 제외하고는 조직문화에 의지를 가지고 직접 개입하는 CEO를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조직문화 담당자의 역할이 어려운 것이다.


물론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조직문화 담당자가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백번 양보해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조직문화가 변화했을 때 조직에서 그것을 조직문화 담당자의 공으로 인정해 줄지 의문이다. HRD/OD영역은 ROI를 측정하기 굉장히 어렵다. 눈에 보이는 수치로 평가할 수 없다. 회사 실적이 좋거나, 리더가 바뀌는 등 조직문화 담당자가 개입할 수 없는 일들로 조직문화가 저절로 좋아지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열정과 근면성실한 태도가 평가기준인 경우가 많았다. 10년 이상 근무한 결과 그랬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로 내 업무 성과가 달라지고 오로지 근무 태도로만 평가 받는 것, 이는 성장에도, 커리어에도, 개인 자존감에도 치명적이게 부정적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성향과도 맞지 않는다.


결국 조직문화 담당자도 전망이 밝아 보이지는 않다. 역할은 바뀌어도 허공에 헛발질만 한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전문가로 성장할 수 없는 직업으로 나는 결론 내렸다. 한마디로 미래가 암울하다. 그래서 이직도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있지 않다. 이런 나에게 면담 중 팀장님은 HRD 직무 전문가로서 성장할 것인지, 리더로 성장할 것인지 내 커리어 패스를 물으셨다. 나는 선택지에 없는 ‘직무전환’으로 답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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