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유튜브 동영상 아래쪽에 AI 대화창이 눈에 띄었다. 창 이름은 ‘이 동영상에 대해 물어보세요’였다. 거기에는 친절하게도 두 개의 프롬프트가 예시로 나와 있었다. ‘동영상을 요약해 줘’와 ‘관련 콘텐츠를 추천해 줘’. 아니, 이거 내가 원하던 기능 아닌가?
언제부턴가 나는 유튜브를 팟캐스트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점차 어른이 되어가는 수순이었다.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예능보다는 정보성 콘텐츠를 더 찾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이런 콘텐츠들은 처음에는 10분짜리 영상이 대부분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30분짜리가 많아지더니 이제는 1시간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숏폼 트렌드의 반대급부로 롱폼도 나타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텔링을 고민한 짧은 구성이라기보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이나 대화를 통째로 올리는 경우도 점점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고민이 하나 생겼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짧고 보고 싶은 영상은 많아졌는데, 썸네일을 보고 흥미로울 것 같아 눌러보면 영상 길이가 1시간이다. 너무 길다. 1시간을 다 보려는 마음이 잘 먹어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내용이 1시간 내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어느 부분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데 그 시간을 투자하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그냥 넘겼던 적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기능이 바로 ‘동영상 요약해 줘’였다. 구간별로 어떤 내용인지 정리해 주고, 클릭하면 해당 부분으로 바로 이동할 수도 있다. 정말 내가 찾던 기능이었다.
이 기능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조금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콘텐츠 소비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콘텐츠 생산자를 지향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튜브 콘텐츠 지형이 바뀔 수도 있는 기능처럼 보였다. 정보가 요약돼 버리면 굳이 영상을 볼 이유가 없어질 수도 있다. 유튜브 수익의 대부분은 조회수와 시청 시간에서 나오는데,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콘텐츠는 앞으로 점점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연휴 동안 빠져서 보던 유튜브 하나가 떠올랐다. ‘미니 포레스트’라는 채널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은데, 시골집을 미니어처로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요리를 하는 영상이다. 주방 식기, 채소, 해산물, 고기까지 전부 작게 만들어 요리를 한다. 음성도 없고 자막도 없다. 그저 배경음악에 요리하는 모습이 나올 뿐이다.
https://youtu.be/za_K4dlwgJU?si=61vKNbNQU5Ztjqpt
남편은 그 영상을 보면서 “저건 광기다!!”라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작게 만든 숲 속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데, 단순히 작은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새우장을 만든다고 하면 새우젓에 들어갈 만한 크기의 민물새우를 직접 구해온다. 그 작은 새우의 껍질과 내장도 하나하나 손질한다. 아주 작은 칼로 실제로 재료가 썰리고, 미니 믹서기도 만들어 실제로 재료를 간다. 주물팬 같은 식기도 미니 사이즈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어떤 도구들은 3D 프린터로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심지어 작은 채소를 표현하기 위해 직접 식물을 키워 작은 열매가 맺히면 그걸 따서 사용하기도 한다. 그걸 보면서 계속 ‘저거까지 한다고?’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요약 기능을 보고 이 영상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영상은 요약이 잘 되지 않는다. 요약할 거리가 없다. 음성도 없고 설명도 없고 그저 요리하는 모습이 나올 뿐이다. 그렇다고 이 콘텐츠에 정보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한식 요리가 많이 나오는데 조리 과정이 꽤 정확하다. 실제로 촬영 후에는 그 음식을 먹기도 한다고 하는 걸 보면 진짜 레시피다. 댓글을 보니 이 영상을 보고 요리를 배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이 요리에서 중요한 것은 레시피가 아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보는 요약될 수 있지만 방식은 요약되지 않는다. 미니포레스트의 콘텐츠는 요리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미니어처 세계를 만들어가는 방식 자체가 콘텐츠였다. 이 콘텐츠는 요약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결국 영상을 볼 수밖에 없다.
비슷한 경험이 하나 더 있다. 작년부터 즐겨보고 있는 ‘정서불안 김햄찌’의 영상이다. 비밀번호를 만들 때 등장하는 각종 조건들을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풀어낸 콘텐츠다. 비밀번호를 지키는 문지기 같은 캐릭터가 등장하고, 비밀번호를 통과시키기 위해 ‘대문자 포함’, ‘특수문자 포함’, ‘이전에 사용하던 번호 제외’ 같은 조건을 하나씩 충족시켜 가며 문지기를 폭파시키는 식이다. 하나를 맞추면 또 다른 조건이 나타나고, 계속 보완하다 보면 어느새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그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다. 회사에서 비밀번호를 만들다가 문득 그 영상이 떠올라 “이거 김햄찌 아니야?” 하며 화면을 캡처해 둔 적도 있었다.
https://youtu.be/qkw6mUy5hmM?si=xGiRGVklzg_3Mh1N
생각해 보니 내가 재미있게 본 콘텐츠들의 공통점은 그 사람의 방식이 있었다는 점이다. 미니어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집요하게 디테일을 쌓아 올리는 방식. 단순한 일상의 장면을 판타지 애니메이션의 한 씬처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방식.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경우였다. 이런 콘텐츠는 여러 번도 더 보게 된다. 김햄찌 영상은 재밌고 짧기도 해서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른다.
요즘 나는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원래 나는 글을 쓸 때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정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전개할지 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문체를 다듬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챗GPT가 등장하면서 글 작업에 AI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생산성이 기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갔다. 덕분에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글을 빠르게 쓸 수 있었다. 빠르게 산출되다 보니 더 많이 생성하고 싶어 졌고, 그 과정에서 구성이나 문체에 대한 고민은 조금 뒤로 밀려나 있었다. 글을 올리면 얻는 반응들이 내게는 도파민이 되기에 이런 보상만을 좇으려다 이렇게 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AI로 생성된 콘텐츠들을 접하고, 요약 기능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조금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약될 수 없는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내용을 다 알아도 어떻게 풀어갔는지 디테일을 보고 싶어지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정보는 이제 언제든지 요약해서 얻을 수 있지만, 그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는지는 요약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앞으로의 콘텐츠는 정보 자체보다 그 사람의 방식이 드러나는 콘텐츠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AI가 정보를 요약해 주는 시대가 오면서 콘텐츠의 기준도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앞으로는 정보만 있는 콘텐츠로는 살아남기 어렵고, 개성 있는 방식이 반드시 동반돼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