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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ingbelle Jun 09. 2021

삐딱해서 사랑스러운

014. Salem ilese - Mad at Disney

무한 긍정을 숭배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더 착하게 굴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캠프파이어 모닥불 앞에 앉아 촛불 든 이들처럼 눈빛을 빛내는 모습이 좋아보였던 시절. 그러나 저성장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다름아닌 자조(自嘲)의 감성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비웃는다. 끈기도 없으면서 요행만 바라는 우스운 내 모습을 손가락질한다. 그러면서 묘하게 힘을 얻는다. 랜선으로 연결된 이들의 댓글로 나만 이러는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신조차 비꼬아 보는 배포를 가진 이들이 남에게는 오죽할까. 특히나 진정성 없는 기성세대에게는 더욱 가차 없고 거침없다.  



<Mad at Disney>는 인디 뮤지션이었던 Salem ilese를 단숨에 메가히트 아티스트로 만들어 준 대표적인 틱톡 세대 히트송이다. 제목이자 후렴구인 "I'm mad at disney (나 디즈니한테 화났어)"가 반복되며 어릴 적 보고 자란 디즈니 속 동화같은 사랑들이 허상임을 깨달은 20대 여성의 눈으로 전개되는 곡이다. 이런 저런 연애를 해 본 화자에게 디즈니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 투성이다. 신데렐라는 왕자와 결국 성격 차이로 이혼하게 될 것이며, 백설공주를 키스로 깨운 백마 탄 그는 곧장 모텔로 갈 생각밖에 없을 게 뻔한 데. 디즈니 커플들의 사랑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디즈니가 날 속여서 불만인 화자는 세일럼의 통통 튀는 음색으로 연신 볼멘 소리를 낸다. 하지만 무슨 마음인지 너무 알겠어서 사랑스럽다. 이런 바이브로 전세계 틱톡 유저의 공감대를 얻었고, 디즈니 캐릭터를 본뜬 화려한 코스프레와 함께 100만 건 이상의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100년 전통의 디즈니 동화처럼 한국인에게는 오래도록 전해져 온 속담이 있다. 생각해 보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라는 말 참 답답하다. 이 글을 쓰며 <Mad at Disney>를 한 곡 반복해 들었더니 어쩐지 '돌다리 두들기면 손만 아프니 일단 검색하자'라고 바꾸고 싶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도 새삼 기괴하다. 세상에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도 반드시 있다. 그러니 최선을 다했다면 그때는 포기해도 된다. 그렇게 조금은 삐딱하게 살아도 괜찮은 다양성의 시대가 우리에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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