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부피감에 대해
행복의 시대다.
정확히는 행복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다.
좋은 차, 좋은 옷, 화목한 가정, 경제적 자유, 권력.
그것들이 나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될 때
우리는 어쩐지 ‘행복한 나라의 시민권’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세계는 깔끔해진다.
행복과 불행이 서로 다른 구역에 살고,
우리는 그 경계선을 넘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양귀자의 <모순>은 묻는다.
정말 선이 그어져 있냐고.
진진의 엄마와 이모는 쌍둥이다.
누가 봐도 같은 얼굴, 같은 출발선.
그러나 결혼이라는 단 한 번의 선택으로 그들의 삶은 극명하게 갈라졌다.
이모가 가진 풍요와 안정은 엄마에게는 없고,
엄마가 가진 파란만장한 삶의 활력은 이모에게 없다.
소설은 이 기묘한 대조를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와 이모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으로 한 시대를 살아냈다.
행복과 불행이 이처럼 선명하게 갈라져 있는 생을, 나는 일찍부터 보아왔다.”
같은 것을 보고도
누군가는 숨이 막히고, 누군가는 살아난다.
그럼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이건 행복이다, 저건 불행이다—라고.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랑의 모순을 살아낸다.
진진이 만나는 두 남자는 그 모순의 양극단에 서 있다.
한 남자, 김장우는 지금-여기를 산다.
풀내음, 노을, 순간의 감동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그는 ‘산비탈의 들국화’ 같은 사람이다.
다른 한 남자, 나영규는 철저히 계획적이다.
사랑마저 인생 계획의 일부로 여기는 그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진의 마음은 정반대로 반응한다.
덜 사랑하는 나영규 앞에서는 한없이 편안하고 솔직해지지만,
더 사랑하는 김장우 앞에서는 좋은 모습만 보이려 자신을 포장하고 만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작아지고, 부자유스러웠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첫 번째 모순이다.
더 사랑할수록 불안해지고, 덜 사랑할수록 안전해진다.
이 모순은 진진의 아버지에게서 극대화된다.
그는 가족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가정이 감옥처럼 느껴졌고,
그 사랑에서 벗어나려 평생을 발버둥 쳤다.
하지만 정작 혼자가 된 노을의 순간에는
사무치게 가족을 그리워했다.
넘치는 사랑이 자신을 파괴하는 감옥이 된 것이다.
"해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메면 안돼
그러다 하늘 저켠에서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결국 사랑은 그 자체로 모순 덩어리다.
넘치면 감옥이 되고, 모자라면 평온한 무덤이 된다.
소설은 이 잔인한 진실을 이렇게 말한다.
“너무 특별한 사랑은 위험하다.
사랑조차도 넘쳐버리면 차라리 모자란 것보다 못한 일이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랑의 정답 대신,
사랑이 가진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모순의 구조를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모순적인 삶을 살아내는가.
소설은 그 답을 ‘삶의 부피’와 ‘생기’에서 찾는다.
알코올중독 남편, 사고뭉치 아들.
진진의 엄마는 ‘불행의 전시장’을 통과하지만,
이상하게도 생기로 빛난다.
고통을 온몸으로 맞고 해결해나가는 그 분투 속에서
엄마의 삶은 누구보다 두터운 부피를 갖게 된다.
“어머니의 웃음은 나날이 힘차진다.
어머니에 대해 연구할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것, 불가사의한 활력일 것이다. …
아, 어머니의 불행하고도 행복한 삶.”
반면, 모든 것을 가진 이모의 삶은 점점 색을 잃어간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무덤 같은 평온’이라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로 그 평온의 정체를 고백한다.
“무엇이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 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야. …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굴곡 없는 삶은 부피를 가질 수 없다는 듯이.
불행이 주는 고통과, 그것을 해결하려는 분투가
역설적으로 삶의 부피를 만들고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것이 바로 불행의 역설, 모순의 가치다.
나 역시 그런 적이 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
가장 살아있는 순간이었던 때.
고통이 끝나갈 기미가 보이자
뜻밖의 우울과 슬픔이 덮쳐와
나는 당황했다.
아마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통이 끝나면 내 생기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 한 편 불안했던 것 같다.
다들 행복 시민권을 얻으려 달려가는 현재에
고통의 끝을 보고 우울해하는 나를 보며
이게 괜찮을까- 라고.
하지만 <모순>을 덮고 나니, 이제는 조금 안심이 된다.
나는 행복과 불행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나만의 ‘굴곡’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타인에게 증명하는 삶이 아닌,
오직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내 인생의 ‘부피’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살아있음의 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