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함-자연스럽다

변화를 고요히 지켜보는

by 지금 여기

이제 이 브런치북의 마지막 연재 글을 적어보려고 한다.

마지막 글의 주제는 평안함이다.


평안함은
있는 그대로에서 안전하고, 차분하고, 만족스러운 상태다.


나는 이 감정을
‘조용함’보다 ‘자연스럽다‘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우리가 편안하다고 느끼는 풍경을 떠올려보자.


흐르는 강물,
살랑이는 나뭇가지,
파도가 오고 가는 바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설득되기 전에
몸이 먼저 풀린다.


숨이 길어지고,
어깨가 조금 내려가고,
가슴이 덜 서두른다.


평안함은 대개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감정이다.


흥미로운 건
그 풍경들이 하나도 멈춰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은 흐르고
나무는 흔들리고 부러지고 다시 자라며
바람은 생겼다가 사라지고
땅은 아주 느리게 움직인다.


자연은 변화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변화 앞에서 고요해진다.


아마도
평안함이란 변화가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변화 곁에 머무를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삶도 그렇다.


사라지지 않는 일들이 있다.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하루가 있고,
예상치 못한 말 한마디가 있고,
갑자기 밀려오는 감정이 있다.


그때 우리가 원하는 건
감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나를 훼손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내 안의 관찰자의 자리라고 부르고 싶다.


감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는 자리.


흐르는 물을 붙잡지 않고,
바람에 흩날리는 잎을 하나하나 잡지 않으며,
스쳐 가는 바람을 멈추게 하지 않는 것.


그저 바라보는 것.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이미 내가 감정 한가운데가 아니라
감정의 바깥, 혹은 옆에 서 있다는 뜻이다.


그 거리만큼
신경계는 다시 균형을 찾는다.


너무 흥분하지도, 너무 꺼지지도 않는
살아 있는 안정.

(어떤 언어로는 이것을 ‘인내의 창’이라고 부른다.)


감정은 물과 나무와 바람처럼 흐른다.


흐르는 감정을 붙잡거나 없애거나
모양을 바꾸려 들지 않고
그저 지나가게 두면,


감정은 제 기능을 다 한 뒤
조용히 흘러간다.


연구에서는 이런 태도를

‘감정을 표현하는 데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comfort with emotional expression)’로 부르기도 한다


슬픔은
충분히 울어야 마무리되고,


불안은
충분히 불안해 본 다음에야
안도감이 찾아오고,


두려움은
충분히 두려운 뒤에야
용기가 남는다.


화는 나를 보호하는 일을 마치면 물러나고,

상실은 비어 있는 세계를 끝까지 바라본 뒤
조금씩 새로운 형태로 바뀐다.


감정은 문제라기보다
대개 작동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신호다.


그래서 평안함은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감정이 지나가도록
길을 내어주는 상태다.


그리고 그 길을 내는 동안에도
내가 나를 버리지 않는 상태다.


불안에 휩싸이지 않고
후회의 가시를 삼키지 않고
무기력을 비난하지 않고
죄책감에 매달리지 않으면서,


고요히 하루의 흘러감을 감상하고
오르고 내림을 지켜보며
그 굴곡에 감사하고
그 굴곡 속에서 행복을 경험하는 것.


어떤 연구자들은 이 상태를 '감정적 편안함'이라 부르며,
긍정적인 감정과 함께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깊은 차원의 웰빙이라고 설명한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편안하다’라는 말을
조용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편안함을
'자연스럽다'라고 적고 싶다.


자연의 모습과 닮은 우리의 삶을
억지로 고치지 않고
흐르게 두는 과정.


이 감정이 마지막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마지막은 끝이 아니라,
돌아올 수 있는 곳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그곳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한다.




이 브런치북은
우리의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 더 호기심을 갖고 바라보고

이해하며 다룰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다.


애정의 눈을 갖고 바라보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독이 아닌

생명력으로 다가온다.


오늘도
풍부한 감정을 살아낸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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