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생의 그래프 위에서

by 지금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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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행복을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고통이 없는 상태는 무엇일까?


굴곡이 사라진 삶일까?
내려감 없이 평온하기만 한 날들,
오름만 이어지는 생의 그래프.
…그게 행복일까?


의학 드라마를 보면,
환자의 심장박동 그래프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삐—’ 소리와 함께 멈춘다.
그때 의사는 사망 선고를 내린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오르고 내리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삶의 이치인데,
우리는 자꾸 그 흐름을 거스르려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
불안도 고통도 없이 일관되기만 한 상태를
‘행복’이라고 믿어버린다.


그런데 변화가 없는 평온은 죽음에 가깝다.

어쩌면 내가 정말로 원한 건

행복이 아니라
추방당하지 않을 안전이었을지도 모른다.


관계에서,
평가에서,
타인의 시선에서,
그리고 이 삶에서.


그래서 나는 행복을 좇는 척하면서,
사실은 ‘무너지지 않을 조건’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학술적으로 행복은 흔히 ‘주관적 안녕감’이라고 정의한다.

‘주관적’이라는 말은
행복을 객관적 지표로 딱 잘라
측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50억을 갖고 있어도 불행한 사람이 있는 반면,
5억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다.
5억이 있다가 10억이 되면 환희를 느끼지만,
20억이 있다가 10억이 되면 상실감을 느낀다.


결국 돈, 명예, 사랑 같은 조건들이
어느 정도 갖춰져야 행복하다는
‘수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은 결국
내가 내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내 삶에 만족하는지,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편안함, 즐거움, 흥미)를
얼마나 자주 발견하는지,

그리고 부정적인 정서(불안, 우울, 두려움)가
나를 얼마나 깊게 잠식하는지를 종합해
스스로 내리는 판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행복을 좇을까?

행복이 ‘시선’의 문제라면,
행복은 사실 좇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선택’하는 것에 가깝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벌어진 일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선택하는 것,
그 선택이 나의 행복을 결정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선택은 오직
‘안전한 몸’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을 위협하는 진정한 적은 불행이 아니라,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즉 안정감의 상실일 것이다.


심장박동이 내려갈 때
“이러다 내가 죽는 거 아니야?”라고 믿어버리면,
그 불안감 때문에 나는 선택권을 잃는다.


몸은 생존을 위한 교감신경 모드로 돌입하고,
판단보다 반응이,
선택보다 방어가 앞선다.


전두엽이 담당하는 고차원적인 ‘선택’은
생존의 공포 앞에서 무력해진다.


심장박동이 올라갈 때도 마찬가지다.

“이러다 터지는 것 아니야?”라고 겁을 먹으면,
어떻게든 그 상승을 멈추려 애쓴다.

올라가면 멈추려 하고,
내려가도 멈추려 한다.

하지만 멈추는 것은 곧 죽음이다.

이 굴레 속에서 우리는 처절하게 외친다.

“도대체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거야.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해야만 하는 건데.”


그래서 나는
안정감 다음에야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심장박동이 내려갈 때
“이건 죽음이 아니라 흐름이야”라고
몸이 알아줄 때,


심장박동이 올라갈 때
“이건 폭발이 아니라 살아있음이야”라고
몸이 받아줄 때,


그제야 비로소
나는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오름을 즐기고
내림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가장 낮은 곳에서 다시 오를 날을 기대하는 선택.


그 굴곡을 수용하며
그 속에서 행복을 선택할지는
결국 나의 결정이다.




이제 삶의 흐름을
가만히 응시해 보자.


올라감이 어디까지 닿을지
기대로 바라보고,

내려감이 어떤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지
도망치지 말고 느껴보자.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것은
삶의 기쁨이자 살아있음의 증거다.


그 살아있음 속에서
매 순간 내가 주체적으로 시선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내가 정의하는 행복이다.


행복은 평탄한 길을 걷는 안락함이 아니라,
거친 굴곡 속에서도
나를 놓치지 않는 단단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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