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감-내가 괜찮다는 감각

by 지금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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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쓰고 난 뒤, 나는 한동안 묘하게 조용해졌다.
좋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만큼,

동시에 이런 질문이 남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정말 괜찮은가.


그 질문을 품고 가다가, 나는 ‘안정감’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안정감은 머리가 아니라 몸의 대답이다.
생각으로 “괜찮아”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상태.


그저 나로 살아도 된다는 감각.


내가 조금 서툴러도, 조금 부족해 보여도,
그 이유로 관계에서 추방당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사람들은 안정감을 대단한 자신감으로 착각하지만,
내가 보기에 안정감은 오히려 사소하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된다”는 아주 작은 자리.


그 자리가 있으면, 솔직함을 드러낼 수 있다.
솔직함을 드러낼 때 내가 나로써 관계가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말하려다가 멈춘다.
아니, 멈추는 척하면서 다른 말을 꺼낸다.
부드럽게 말하고 싶은데 날카롭게 말해버리고,
위로하고 싶은데 설명하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속상해하며,
이해받고 싶은데 먼저 공격한다.


그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위협의 문제다.


위협을 느끼는 순간, 뇌는 우리를 살리는 쪽으로 움직인다.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얼어붙거나.

그리고 그 모드가 켜진 상태에서는
진짜 중요한 "나의 진짜" 말들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


칭찬을 들었는데 마음이 불편해지는 날이 있다.
“예쁘다”는 말이 고맙지 않고 불안한 날.
나는 내가 예쁘다고 믿지 못할 때가 많고,
그럴 때 칭찬은 진심이 아니라 심판처럼 들린다.
조롱일지도 모른다고 마음이 먼저 결론을 낸다.
나는 공격을 막기 위해 표정을 단단히 잠그고,
때로는 웃지 못한 채 화를 낸다.


실은 칭찬이 위험한 게 아니라,
그 칭찬을 받아들이는 내 안의 자리가 흔들리는 것이다.


또 어떤 날은 누군가의 마음을 꼭 안아주고 싶다.
“나도 그런 적 있어.”
그 한 문장을 말하면 될 것 같은데,
내 안에서 누군가가 속삭인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네가 뭘 안다고?


그 목소리가 올라오는 순간,
나는 공감 대신 이론을 꺼낸다.
“원래 그 상황은 힘든 거야.”
“보통은 이렇게 하면 돼.”
상대는 위로를 받지 못하고, 나는 더 멀어진다.
따뜻해지고 싶었던 마음이, 오히려 차가운 말로 끝난다.


이 장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아니라 관계가, 평가가, 시선이
나를 추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래서 나는 안정감을 이렇게 다시 정의하게 된다.


안정감은
내가 틀릴 수 있어도 괜찮고,
거절당해도 무너지지 않고,

성질을 내도 거부당하지 않을 것이며,
부끄러워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감각이다.


안정감은 수치심과 정 반대에 있는 것 같다.
나는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안도감.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신뢰.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감각.


이 스위치가 켜지면, 세계는 조용해진다.
위험을 찾느라 바쁘던 눈이 잠시 쉬고,
긴장하던 어깨가 조금 내려간다.

그제야 나는 생각할 수 있다.
차분하게 판단할 수 있고, 차분하게 말할 수 있다.

무리한 부탁이 왔을 때도,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위협을 경험하고 있는 나는 그 자리에서 판단할 새도 없이

이미 “알겠어”를 꺼냈을 것이다.
하지만 안정감의 자리에 있는 나는 말 할 수 있게 된다.

“지금 한 말은 나에게 상처가 되었어.”
“이 요구는 버거워. 나는 이런 방향이 좋아.”


상대의 거절이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사정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비로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안정감은 혼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안정감은 대개, 관계 안에서 반복해서 경험한 안전에서 자란다.

처벌받지 않는 경험.
조롱당하지 않는 경험.
내 마음을 말했을 때 누군가가 급히 결론 내리지 않고
그 마음을 잠시 들어주는 경험.


이 경험의 시작은 나와 나의 관계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내 안에도 “괜찮다”는 감각이 남는다.

그리고 그 감각이 남아 있을 때,
나는 나를 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계절이 변하듯 마음도 변한다.
내 마음의 흐름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안정감 속에서만 피어나는 평화를 조용히 만나게 된다.


글의 처음에 던졌던 질문을 다시 떠올려 본다.

'나는 지금, 정말 괜찮은가.’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하게 대답할 수 있다.

그것으로 괜찮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나는 나를 놓치 않기로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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