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살아도 된다는 허락
영화가 시작되고 30분쯤 지났을 때, 나는 이 남자가 곧 죽을 거라고 확신했다.
부모 없이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란 남자.
별다른 목표도 없이 지리한 삶을 통과해온 사람.
그런 그에게 한 여자가 찾아왔고,
그 여자는 목표였고 유일한 밝음이었다.
아이까지 생겼다.
‘정착’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현실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정착을 앞둔 그날,
남자가 돌아왔을 때 집은 불에 타 있었고 아내와 딸은 사라져 있었다.
그에게 더 붙잡을 의미가 하나도 남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아, 저 남자, 죽으려나.
그런데 영화는 내 예상을 비껴간다.
남자는 죽지 않는다. 극적인 반전도 없다.
누군가를 다시 만나지도, 다시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고통의 과정을 온전하게 통과한 뒤, 다시 나무를 벤다.
묵묵히 하루를 지나고, 작업장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소소한 말을 주고받고, 또 나이를 먹는다.
잃어버린 아내와 아이를 계속 기다리면서.
그렇게 늙어간다.
아무도 봐주지 않고, 아무도 의미를 두지 않는 길가의 잡초가
자기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처럼.
울창한 나무의 터널을 지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초록의 내음 위로,
이상한 평온이 깔린다.
그 평온은 ‘의미 없음’에서 온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무의미는 어둠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허락이다.
내가 쓸모 있지 않아도, 대단하지 않아도, 그냥 살아 있어도 된다는 허락.
깊은 상실감 속에서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조용히 말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살아도 된다고.
우리는 왜 계속 살아 있는 이유를 찾는 걸까.
마치 이유가 없으면 살면 안 되는 것처럼,
누군가의 허락이 있어야만 견딜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생각해보면,
태어나서 나의 삶을 꾸준히 살고 그리고 어떤 이유로든 죽는다면
그걸로 삶은 충분히 성립한다.
거창한 의미 같은 건 없어도 괜찮다.
그 투박한 과정 자체가 어쩌면 가장 숭고한 삶의 모습이라고,
이 영화는 묵묵하게, 오래,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저 살아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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