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할 건 인정하고 나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자
한동안 내 마음속에 돌덩이처럼 부담스럽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문득 ‘뭐가 문제였지?’ 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관점과 태도가 변해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 날이 있었다.
뭔지 모르게 경제력을 과시하는 모습에서 불쾌감과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그에 대해 나 스스로 ‘열등감에서 저러겠지’하며 그 사람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나보다 인격적으로 아래로 보며 연민의 마음을 가지려고했던 것이 몇 개월 전이라면 그날의 나는 그냥 그 불쾌감을 그대로 인정하며 내가 편치 않은 상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아진 것이 변화였다.
그냥 솔직담백하게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구나......
나하고는 맞지 않는구나......
내가 그 사람보다 인격적으로 우월하다는 건 나의 착각이었구나......
그냥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일뿐이구나......
인정! 인정!
그러고 나니 불필요하게 그 사람의 내면을 분석하고 이해하고 나보다 도덕적으로 심리적으로 미성숙하다는 둥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아도 그냥 견딜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가다가 마주쳐도 얼마든지 가볍게 웃으며 인사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내가 한결 가벼워졌다. 아침에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불어오는 살짝 차가운 바람을 기쁜 마음으로 맞게 되었고 마음에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아침밥을 차려먹고 나온 설거지를 하기위해서 잠시라도 누워서 언제 채워질지 모르는 에너지가 충전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생각이 올라올 때 바로 해치울 수가 있었다.
마룻바닥이 미끌거려 자꾸 넘어질 것 같이 미끄덩거리는 걸 느끼고 나서 ‘그냥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면서 외면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굳이 물걸레 청소포를 꺼내어 매달고 바닥을 박박 문지를 수 있게 되었다.
막상 하고보면 다들 1분에서 길어야 5분 정도 걸리는 일인데 나는 그동안 그 짧은 일들을 수행할 순간 에너지가 항상 모자랐던가보다. 미루고 쌓이고 하다가 참기 힘들어지면 그때 한꺼번에 해치우곤 했는데 사실 그렇게 되면 쌓이는 동안도 스트레스, 쌓인 걸 치우면서도 스트레스였다. 가볍지가 않고 항상 무거운 돌덩이가 어깨위에 앉은 듯 부담감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날 때 그냥 바로바로 헤치우니 가볍다. 일상이 아주 조금 살짝 가벼워졌다. 그러다보니 이런 건설적인 생각도 들었다.
‘시스템이구나!’
그런 얘기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지만 내 스스로 ‘아하!’ 하며 깨닫게 된 순간은 최근이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온몸으로 깨우친 느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동으로 흘려듣기 cd를 플레이하도록 시스템을 만들면 중간에 갈등할 틈이 없이 그냥 습관이 되어 가볍게 할일을 할 수 있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설거지를 하고 식탁주변과 거실소파주변을 청소기로 5분정도 청소하면 하루종일 상쾌하게 보낼 수가 있다. 더불어 주말에 대청소할 때 스트레스와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
‘베테랑 전업주부들은 이미 많이들 그리하고 있겠지?’ 싶은 생각이 이제 서야 든다. 결혼한 지 15년 만에 깨달은 사실...... 웃음이 나온다.
‘그동안 참 아마추어로 살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