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에게 생일선물이란?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스스로를 이해한다는 것.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매번 실감합니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가 현실적인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
'이게 나였어?'하고 깜짝 놀라 뒷걸음질치는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저는 해마다 제 생일에 남편과 자꾸 싸우게 됩니다. 올해도 비슷한 일이 또 생기고야 말았는데요.
싸움의 이유는 생일선물입니다.
저는 선물에 대해 상대방의 취향과 필요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관심과 애정을 기반으로 선물을 고르는 과정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저희 남편은 선물도 어디까지나 물건이므로 돈이나 상품권으로 받는 것을 가장 좋아하며 20년전 제가 처음 선물한 생일선물도 받자마자 마음에 안든다며 그 자리에서 교환하러 백화점으로 향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 살고 있으니 이제는 서로에게 적응할만도 한데 매년 제 생일이 돌아올때면 저는 기대하지 말아야지, 선물을 준비 못하는 건 남편의 성격일뿐이지 애정이나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하려고 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를 못합니다.
작년에 함께 암투병도 찐하게 했겠다 올해부터는 전략을 바꿔서 생일이 있기 몇 주전부터 한 번씩 지나가는 말로
"내 생일선물은 준비하고 있는거지?"
하고 물어보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자꾸 찔러보다보면 둔감한 남편이라도 조금은 바뀌어 뭐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까하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생일날 아침, 마침 일요일이었지만 저는 혼자 일어나서 전날 먹다 남은 찐 단호박을 느즈막히 먹게 됩니다. 남편은 그 시간 침대에서 핸드폰으로 축구경기를 보는지 깨어있지만 움직이지 않더군요. 기대하지 말아야지, 남편의 성격이 어차피 바뀌기 힘드니 내가 적응해야지, 하고 되내이면서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가던 제 마음속 섭섭함의 견고한 둑에 작은 균열이 일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작은 균열이 와르르 무너져 눌러왔던 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준비도 할 수 없었던 것이며 오늘이 생일날이니 지금부터 나가서 함께 돌아보고 원하는 것을 사면 되지 않겠냐고 억울해했습니다.
남편의 말이 합리적일 수 있다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면서도 섭섭하고 화나는 마음은 누그러들지 않았고 그렇게 저는 혼자 방에 들어가서 제 안의 실망감에 대해 이렇게 밖에 대처하지 못하는 제자신이 참 못났다는 생각을 하며 한참을 울고 나서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외출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외식을 하고 차를 마시고 백화점을 둘러보고 사온 케익을 나눠먹고 그렇게 그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생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거창하게 남편에게 뭔가를 기대할 날은 아니기도 합니다. 따지고보면 제가 태어난 날이니 애쓰신 부모님께 감사해야하는 날인 것도 같고, 내 생일이니 나 스스로 축하하고 감사하며 스스로에게 선물을 할 수도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그동안 남편이 제게 해오던 항변도 카드건 통장에 있는 돈이건 어차피 공동소유이고 당신 마음대로 쓰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데 당신이 원하는 걸 스스로 사면 그만이지 왜 자꾸 자신에게 선물에 대한 부담을 주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생각하는 선물의 의미에 대해 남편에게 반복해서 설명을 해왔던 것이구요.
더 이상은 생일날 아침에 이런 상황들을 겪는 것을 원치 않기에 그날 왜 그렇게 제가 감정적으로 무너졌나에 대해서 돌이켜보았습니다.
저는 생일날에 대해 혼자서 암묵적인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내가 하는 마음씀과 수고에 대해 그날, 일년에 한 번 있는 그날 인정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남편은 그런 제 기대까지는 당연히 모를 것 같습니다.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제가 설명한 적이 없으니까요.
사회속에서 저라는 사람을 활용하여 기여하고 있는 일이 별다르게 없다보니 제가 주로 머물면서 에너지를 투여하고 있는 가족과 집에서 저는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직장이나 조직에서는 일년에 한 번 평가를 받고 그 평가를 기반으로 연봉이 결정되고 한 달에 한 번 급여를 받지만 전업주부에게는 그런 프로세스가 없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가족을 위해서 꼭 필요한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하면서 그 가정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마음을 쓰고 몸을 쓰지만 스스로가 그 과정과 성과에 대해서 관심가질 뿐, 타인들에게까지 그것이 전달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바쁜 가족들을 붙들고 내가 이런 저런 일들을 했으니 칭찬하고 인정해달라고 부탁하기에는 구차스럽기도 하고 별로 효율적으로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혼자 마음속으로 생일선물에다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년에 한 번 받는 제 업적에 대한 평가나 성적 같은 것이라구요. 남편이라는 동료 혹은 상사로부터 받는 상징적인 보상이라고 말입니다. 직장인의 연말 평가나 연말보너스 정도라고 하면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많고 많은 기념일 중 생일일까요? 그것도 생각해보니 저라는 사람으로 온전히 세워지는 유일한 날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직장에 다닐때처럼 혼자 발표를 할 일도 혼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보고할 일도 없으니 그냥 생일이 유일하게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 가족들이 주목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날이더라구요.
최근에 지난 1년남짓한 기간동안 써오던 글을 모아서 출판사에 투고를 했는데 여기저기서 거절의 답변만을 듣고 있다보니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은 서러움이 모두 한꺼번에 생일선물로 몰려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애꿋은 제 남편만 영문도 모르고 제 여러가지 좌절과 슬픔의 폭탄을 투하받고 어리둥절 하고 있는 모습이네요. 새삼 미안해집니다.
저는 아직 생일선물을 고르지 못했어요.
앞에서 이야기한 저런 이유들을 갖다붙여 스스로에게 보상을 준다면 비싸고 화려한 핸드백 하나 정도는 꼭 사서 유치하더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제 마음 속 깊은 곳에 떼쓰는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을 달래주어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막상 비싼 가방을 사서 들고 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운 성격이다보니 그냥 소박하게 평소에 자주 사용할 만한 실용적인 에코백을 사는 것이 마음 편할 것도 같습니다.
남편분들 혹시 아내들의 이런 마음 알고 계신가요?
사회속에서 일하는 것을 내려놓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계신 전업주부 분들 혹시 이런 마음속의 자신과 대면하신 적 있으신가요?
일본의 임상심리학자 가토 다이조는 <역경에 약한 사람 역경에 강한 사람>이라는 책에서 정말로 필요한 노력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노력'이라고 말합니다. 역경에 강한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 현실적인 자신을 직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구요.
저는 제 생일날 아침 제가 꿈꾸는 여유있고 관대한, 이상적인 모습의 자신이 아닌 '현실적인 자신'을 직면했습니다.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필요로 하고 자신의 수고와 배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기를 원하는, 아이같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울고 소리치는 방식으로 밖에 대처할 수 없는 미숙한 행동을 하는 제 자신을 만났습니다.
관심받고 인정받고 싶은 내 마음은 알아주고 수용하되 표현방식은 좀 더 세련되고 부드럽게 바꾸어나가야겠다고 이 글을 쓰면서 정리해봅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시는 남편분들이 계시다면 아내가 구구절절 표현하고 부탁하지 못하더라도 아내의 생일만큼은 위에서 이야기한 이런저런 이유로 좀 잘 챙기신다면 결혼생활에 도움이 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와 같은 아내의 입장에 계신 분들은 현실적인 자신과 직면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남편에게 잘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상 생일날 아침에 지지고 볶은 사연을 기반으로 풀어본 현실적인 자신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