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해왔고, 잘 한다고 가끔은 인정받았던 일 중에 하나가 글쓰기였습니다. 제가 쓴 글로 초등학교때 서울의 프레스센터에 가서 상을 받았던 일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제 어린시절의 가슴벅찬 기억 몇 개 중 하나입니다. 20대에 한달간 유럽배낭여행을 가서도 두꺼운 일기장에 그날 그날의 생각과 감정들을 빼곡히 적으면서 낯선 환경에서의 불안과 외로움을 달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일기쓰기를 멈추었어요. 그냥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고 일기에 등장하던 그런 예민하고 섬세한 제 자신이 직장생활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여러 직업과 직장을 거쳐 번아웃을 겪고 오롯히 혼자로 남겨졌을 때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선택이라기보다는 절박했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글쓰기를 하다보니 글이 많이 모였고 원고로 모아 책까지 내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책이 나온 후 그 다음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글을 모으기만 하고 공개하지는 않는 시간이 반복되었습니다. 코로나가 터지고 암을 진단받고 그러는 동안에도 글을 계속 썼지만 공개하지는 않고 혼자만 간직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원고로 모아 정리하여 출판사에 보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출판사로부터 출간 방향에 맞지 않다거나 내용은 흥미롭지만 판매를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지난 번에도 쉽지 않았던 경험이 있기에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거절을 당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서서히 조금씩 예민해지고 의기소침해지는 제 자신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생각을 바꾸기로 하고 나서 다시 용기가 생기는 걸 경험했습니다.
무엇이 되겠다!
무엇을 하겠다!
이런 마음을 내려놓고 일단 글쓰기를 연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온갖 소재로 글을 쓰는 능력을 키워가다보면 지금은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쓴 글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이상 지금 쓴 글보다 뛰어난 글이 제 안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글은 쓰면 쓸수록 늘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누군가로부터 피드백을 받는다면 가속도가 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요. 리스크가 있지만 그만큼 돌아오는 혜택이 클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의 판단만으로 무언가를 실행하는 것을 제한하고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멈추어 있는 시간이 분명히 제게는 필요했지만 이제는 다시 뭔가를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갈 수 있는데까지 다시 숨이 차게 뛰어보고 싶습니다. 그곳이 어디일지는 제 달리기 능력, 심폐력과 지구력을 충분히 키워놓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조급함만은 내려놓고 싶습니다. 꾸준히 하지 못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해나가다보면 언젠가는 길이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의 책 <나를 향해 걷는 열걸음>에 보면 순자의 '권학'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순자는 바람과 비를 갖고 싶으면 우선 흙을 쌓아 산을 이루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람과 비가 거기서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것이지요. 흙을 쌓고 산을 이루는 수고만 하면 바람과 비는 행운처럼 그냥 드러납니다. 바람과 비는 만들어 갖는 것이 아닙니다. 내 수고를 거쳐 현현하는 그들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다만 결과가 온전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마음의 터전을 닦고 또 닦을 뿐이지요."
그리고 우선은 쭈그러진 심장부터 짝 펴라고 권고합니다.
전전긍긍하고 노심초사하는 것.
계산속에 빠져 모험하지 않는 것.
손에 닿지 않는 것은 일찍히 포기해 버리는 것.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은 엄두도 내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을 경계하고 가슴을 쫙 펴고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심장은 지금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