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시아버님 하고 뜻이 안 맞았지만 , 남편을 낳았을 때 너무 예뻐서 아들을 키우려는 마음에 결혼생활을 계속하셨다고 하신다. 내가 결혼해 살아보니 큰아들 위주 생활이고 남편이 집안일을 하려고 하면 어머니가 알아서 저지를 시키셨다. 허리가 약하다는 이유로 모든 일에서 남편을 제외시켜도 3명의 동생이 당연하게 형을, 오빠를 챙기고 불평불만이 없었다. 물론 남편의 몸이 약하기도 하지만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극성에 가까워 누구도 태클을 걸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해주신 몸조리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연 년생이어서 큰아이는 친정에서 돌봐주고 작은아이 낳았을 때 몸조리를 어머니가 해주셨다. 새벽에 아이에게 우유를 주느라고 잠을 못 잤을 거라고, 낮에 며느리가 잠을 잘 수 있도록 아이를 데리고 나가시고 봄에 아이를 낳아서 입맛이 없을까 봐 밥상에 봄나물을 번갈아서 올려 주셨다. 몸조리를 잘 못하면 평생 고생하게 된다고 설거지는 물론이고 찬물을 못 만지게 하셨다. 살아오면서 몸조리를 못해서 아팠던 기억은 없다. 모두가 어머니가 진심으로 며느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해 주신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누이가 시댁으로 매일 출근
어머니가 신경을 써서 잘해주셨는데 잠깐 동안산후우울증이 왔던 것 같다. 이유를 알 수 없는데 누워 있으면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고 마음이 힘들었다.
아이를 석 달 먼저 출산한 시누이가 혼자 아이를 돌보면 힘들 거라고 시어머니가 매일 전화를 해서 오라고 하셨다. 아침에 벨소리가 나면 아~~~ 오늘도 왔구나··· 스트레스가 쌓였다. 94년 여름은 유난이도 더웠다. 방학이어서 큰아이를 데리고 있었는데 세 아이의 젖병을 소독하고, 먹이고 기저귀를 갈면 하루가 가고 몸은 지쳤다. 정말로 더운 어느 날 시누이 아들이 기저귀 발진이 있어 기저귀를 채우지 않고 이불에 눕혀 놓았다. 시누이는 외출을 했고 이불이 여러 개 젖고 빨랫감이 쌓여갔다. 시어머니는 시누이 남편에게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신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데 시누이는 아이에게 책만 읽어 주고 있다. 나보다 10살이나 어리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식사를 마치고 빨랫감은 그대로 나 두고 집으로 가버린다. 다음날 시어머니는 또 시누이에게 전화로 빨리 오라고 하신다. 방학 한 달 내내 반복되는 생활.
스트레스로 갑상선 기능 저하
개학을 앞두고 학교에 출근해야 하는데 출산 후 살이 안 빠져 옷이 안 맞았다. 시이모님이 나를 보고 목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니 정신은 있는데 몸이 방바닥에 붙은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고 팔다리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병원 진찰 결과는 갑상선 기능이 떨어져 대사가 안 되어 체중 조절이 안되고,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원인은 스트레스. 처방은 간단하게도 호르몬제를 먹으면 된다고 한다. 아주 작은 알약 하나를 먹으니 언제 아팠냐고 할 정도로 괜찮아졌다. 호르몬이 얼마나 중요한지 처음으로 알았다. 아프고 나니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이 생각나며 원망스러웠다. 시누이가 매일 오는 것이 힘들다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참 바보같이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어머니의 당뇨병
시어머니가 살이 빠지면서 기운이 없고 많이 아프셔서 큰 이모님 댁에서 간호를 해주시기로 했다. 몸이 아파도 돌지 난 아이를 맡길 때가 없어서 둘째 아이를 데리고 가셨다. 나와 시누이의 몸조리, 집수리, 치아치료가 겹쳐서 몸에 무리가 갔고 당뇨병이 발병한 것이다. 학교에서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가 몸을 추스르러 가는데 아이를 데리고 가신 것에 대한 죄송함에 울컥 해져서 말을 잇지 못했다. 며느리가 직장생활을 해서 돈을 모을 수 있다면 어머니는 어떤 일이라도 도울 수 있다고 하셨다. 큰아들이 부자로 살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애틋함이 나에게 마음으로 와 닿았다. 시어머니가 결혼을 앞두고 궁합을 봤는데 나와 시어머니가 합이 들어 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며느리인 내가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해도 밉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사람 사이에 궁합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