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돌까지의 육아. 프롬 헬 투더 헤븐

외로움이라는 지옥에 빠졌다가 돌아온 사연

by 콩새

지금은 복직을 해서 회사생활에 대한 괴로움이 더 크지만, 그 괴로운 회사로 돌아가는 게 간절할 정도로 육아휴직 시기가 힘들고 외로웠다.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 중 육아맘이 있긴 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쓰는 측근들은 없었다.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상대가 없었다. 게다가 출산 후 코로나19가 급격히 퍼지며 동네 친구들을 만드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아마 2020년의 육아휴직 기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외로웠던 시기였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육아휴직기간이 왜 외로웠는지 돌아보면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힘들었던 시기를 돌아보고 더더욱 둘째에 대한 고민은 접어두게 된다.


첫 번째 이유. '나'를 생각할 시간이 사라진다.

20대엔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정말 많았다. 쓸데 있는 고민이든 쓸데없는 고민이든 대부분의 고민은 나에서 출발했고 나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혼, 출산, 육아는 달랐다. 결혼을 하면서 가족으로 엮인 사람들과의 적응시간이 필요했다.


출산을 하며 새로 태어난 아가와의 적응시간이 필요했다. 살면서 맹장수술도 한번 해보지 않은 내가 배를 10cm 가르는 큰 수술을 했다. 내 몸 돌볼 시간도 없이 젖을 물려야 했다. 24시간 쉴 새가 없었다. 나 딴에는 회사에 매일 출근해야 하고 승진을 앞두고 있는 남편을 배려하기 위해 밤 수유는 거의 내가 다 했다. 2시간마다 수유한다는 게 말로만 들었지 이렇게나 사람이 피폐해지는 것일 줄 몰랐다. 말이 아가가 2시간 만에 먹는 거지, 먹는데 30분 트림하는데 10분 재우는데 10분. 그냥 계속 깨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내 몸을 일으키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 몸이 그 생활에 적응이 된 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고민? 어림도 없다!


두 번째 이유. 일과 다르게 육아는 예측불가

나름대로 20대 중반에 취준생-취업-퇴사-취업을 빠르게 겪어낸 편이다. 회사와 일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다고 생각이 드는 즈음이었다. 회사는 1년 정도 적응하고 나면 업무가 완전히 바뀌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의 흐름으로 돌아가는지 예측이 가능하다.


육아는 정말 예측불가다. 조카 조차도 내손으로 안아본 적이 없었던 나는 산부인과에서 처음 만난 아기를 안는 방법 조차 몰랐다. 아기가 응가를 해서 우는 거였는데 왜 우는지도 몰랐다. 기본적인걸 적응하고 나니 갑자기 잘 먹던 아기가 분수토를 하고, 두피에 피부염이 생기질 않나, 코딱지가 가득 차질 않나. 죄다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익숙해질 만하면 또 다른 어려움이 나타나고의 반복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아가와 24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아기의 예측할 수 없는 반응에 항상 고민해야 했다.


그렇지 나는 '정답형 인간'으로 자란 세대다. 5지선다의 답안지에 무조건 답을 찍어야 하는 것이다. 모를 때마다 맘 카페와 블로그를 들락거리며 어찌어찌 정보를 습득해나갔다. 하지만 또 그것도 정답이 바로 있는 것도 아니다. 상황은 아기가 100명이면 100명 다 다르다. 내 아기에게 딱 맞는 정답이란 없었다.


누가 채점해주지도 않는 정답을 찾느라 진땀이 났다.


세 번째 이유. 공감해줄 사람이 없다

나의 경우 유난히도 주변에 비슷한 상황을 함께 공감할 사람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수유할 때 힘들다고 투정 부릴 사람도 필요한데 난 없었다. 남편과 가족으론 채워지지 않는 '공감'의 영역을 함께 해줄 사람이 없었다. 이래서 다들 조리원 동기가 중요하다고 하나보다.


무슨 자신감인지 조리원 동기 문화가 없는 조리원으로 선택했다. '내가 모르는 상태에서 같이 모르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괜히 마음만 혼란스럽다'라는 식의 자만심이었다. 여자들이 모이면 공감이라는 주제 아래 서로 비교하고 시기하는 시기가 있는 건 사실이고 그 때문에 힘든 사람도 있는 건 맞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리원 동기가 끈끈해지는 건 같은 시기를 겪어낸 '공감'이라는 영역이 생각보다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나면 엄마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아이의 월령과 나이에 맞게 공감대가 형성되고 친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조리원에서는 다들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겪은 사람들이니 얼마나 비슷하게 힘들고 지치겠는가. 그런 공감을 해줄 사람이 나는 정말 없었다. 친구들은 다들 사회초년생을 즐기거나 이제 막 알콩달콩한 신혼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나 혼자 아이와의 세상에 뚝 떨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이런 나의 정신이 피폐해진 와중에 가족행사는 왜 이리도 많은지. 또 나는 100점이 되고 싶은 사람이니까 육아도 가족 간의 관계도 다 너무 잘하고 싶었다. 내 마음이 어떻게 힘들어지는지 알아채지도 못했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곪아버리고 희한한 포인트들에서 터지곤 했다. 갑자기 터져내는 마음들을 같이 사는 남편이 공감해줄 리 만무했다. 심지어 우리 남편의 MBTI는 ISTJ거든. 공감보단 이해가 빠른 사람이란 말이다. 이해가 안 되는 나의 널뛰는 감정을 받아주기엔 남편도 지쳤다.


사실, 나도 엄마가 처음이지만 남편도 아빠가 처음이었거든.


이제 두 돌

육아의 황금기라는 시간이 왔다. '원더 윅스'라는 말도 해당되지 않는 두 돌이 왔다. 여느 곳에서 어린이 입장료를 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신기하게도 이제 소통이 되고 사람이 된 느낌도 난다. 이제야 숨을 조금 돌려본다. 이젠 나도 남편도 엄마와 아빠라는 역할에 조금 익숙해진 듯하다.


정말이지 그 간의 24개월. 2년이란 시간은 지옥 같았다.

그럼에도 견뎌내니 살만한 걸 보니 다들 이러고 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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