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생 낀 세대의 노오력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과 영화에서 보는 지영씨는 무력감, 쓸쓸함, 갈등 이런게 공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1992년도에 태어난 나의 고민은 조금은 더 격동적인 듯 하다. 92년생이 서른이 된 지금. 성실함과 노력을 배운 학창시절이지만, 왜 성실해야하는지는 못배웠다.
분명 학창 시절은 그야말로 성실함과 노력이 모든 미덕이었다. 머리는 귀 밑 3CM여야 했고, 발목양말은 신지 말아야 했다. 80년대부터 급격히 줄어든 출생아수는 92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많아졌다. 반 친구는 늘 40명 이상이었고, 9등급 제도가 시작되며 성적의 정규분포표 안에 나를 끼워 넣었다. 그렇게 열심히 수능을 바라보고 달렸는데, 정작 나를 대학교로 보내준 건 글쓰기였다. 뭔가 좀 이상했다.
어른들은 열심히 하면 된다 했다. 그렇지만 내가 열심히 노력 안 해도 잘 되는 부분이 있었고, 죽어도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뭔가 이상했지만 나는 여전히 성실한 학생이었다. 대학시절은 다채로웠지만 그 속에서 단조로웠다. 새로운 세상일 줄 알았다. 성실하게 앞만 바라본 나에게 새로운 경험은 거북했다. 항상 뼈를 제거하지 않은 치킨을 삼키는 것 같았다.
취업은 해야 했다. 열심히 준비한 회사는 똑 떨어지고 설렁설렁 준비한 회사에만 덜컥 붙기도 했다. 처음으로 노력이 배반하는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 지친 상태로 들어간 첫 회사는 1년 반 만에 퇴사. 대기업 입사를 했다. 우습지만 정말 싫었던 첫 회사의 경험 때문에 그토록 원하던 '대기업'에 입사를 했다. 뭔가 좀 이상했다.
도대체 이 세상엔 내 맘대로 되는 게 있기나 한 걸까? 내 노력은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일까?
그토록 열정적이었던 나는 시들어갔다. 목표가 없는 삶은 무의미해졌다. 우연찮게 결혼을 하게 되었고 엄마가 되며 새로운 내가 되었다. 온전히 내가 사라진 2년을 보냈다. 그리고 서른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미 세상에서 동떨어져있었는데, 할 말은 하고 살고 N 잡은 기본인 MZ세대가 되어있었다. 소확행과 플렉스를 보여주며 사는 디지털 인간으로 분류되어있었다. 주식/코인/부동산 투자는 기본이고, 콘텐츠를 만드는 생산자 역할까지 해야 이 시대를 성실하게 사는 사람인 것처럼 되었다. 안 그러면 그냥 도태.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흐르는 대로 따라가'라는 삶은 단단히 틀린 거였다. 회사생활을 열심히 하는 건 이제 바보 취급당한다. 월급은 대출이자 내는 데다 쓰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이미 세상의 흐름은 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세상의 흐름대로만 따라와도 정답이던 시절은 끝났더라. 흐름에 돌을 박고 나만의 흐름을 만들어야 했다.
지친 육아 끝에 얻어지는 깨달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내가 원하는 대로 전혀 흘러가지 않는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존재다. 이전에는 '삶의 계획'이라는 게 어느 정도 가능했었다. 하지만 엄마의 삶은 30분 후도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나만의 패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세상이 힘들어졌다고 투덜대기만 했다. 육아를 하며 나 자신이 사라졌다고 위로만 바라고 있었다. 나 자신을 사라지게 한 건 바로 나였다. 힘들다고 투덜댄 시간은 사실상 그냥 버리는 자원이었다. 벌써 서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겨우 서른이었다.
N 잡은 수단이지 목표는 아니었다. 나를 정의하는 수많은 과정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이제까지 20대의 나의 발자국을 정의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글을 쓰고 싶어 졌다. 30대의 나는 최대한 여러 곳에 발자취를 남겨놓으려 한다. 순간의 투덜거림조차 기록해놓고 싶어졌다.
92년생 낀세대 워킹맘. 지금의 나를 정의하는 말이다. 92년생 MZ세대면서, 보수적이지도 진취적이지도 못한 낀세대면서 일도 육아도 해야 하는 워킹맘이다. 하루하루 고난이다. 하지만 고난의 나만의 정의로 만들어내는 순간, 성장의 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느샌가 다른 정의가 될 그 순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