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을 이해하기 위한 다섯 번째 퍼즐.
#1
동물에게는 고정행동패턴 (fixed-action pattern)이란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동물이 외부의 특정 자극에 대해 고정적으로 반응하는 행동 양식을 말합니다.
마치 동물 내부에 공식이 있는 것처럼 항상 동일한 방식과 순서대로 일어나는 것이 그 특징이죠.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칠면조가 새끼를 양육할 때, 양육 과정의 모든 행동이
새끼가 내는 ‘칩칩’이라는 소리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하시겠죠?
실험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새끼가 ‘칩칩’소리를 내면 어미는 정성껏 보살피지만,
그렇지 않으면 새끼를 물어 죽이기까지 한다는군요.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 천적인 족제비의 뱃속에 ‘칩칩’소리가 나는 작은 녹음기를 넣었을 때,
놀랍게도 칠면조는 족제비를 공격하지 않고, 품에 안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즉, ‘칩칩’은 칠면조에게 모성이 생기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소리인 것이죠.
#2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저런 고정행동패턴이 인간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사회심리학자 엘렌 랭어와 동료 연구자는 아래의 실험을 통해 인간에게도 고정행동패턴이
적용됨을 증명해 냈습니다.
도서관 복사기 앞에 줄을 서 있는 학생에게 다가가,
”죄송합니다. 제가 서류 다섯 장이 있는데, 복사기를 먼저 사용해도 될까요?
왜냐하면, 제가 지금 몹시 바빠서요“ 라는 이유를 덧붙여 호의를 청하는 실험을 합니다.
실험 결과, 이유를 덧붙인 상기와 같은 부탁은 94%의 양보를 이끌어냈죠.
이유를 덧붙이지 않은 부탁(왜냐하면, 이하가 없음)이 60%의 양보를 이끌어낸 것과 비교하면,
그 덧붙인 이유가 뚜렷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보입니다.
하지만, 다음 실험에서 이유를 밝히는 대신,
”왜냐하면“이라는 단어 뒤에 전혀 새로운 내용 없이
이미 밝혀진 사실을 언급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죄송합니다. 제가 서류 다섯 장이 있는데, 복사기를 먼저 사용해도 될까요?
왜냐하면, 제가 복사를 좀 해야 하거든요”
왜냐하면, 뒤에는 사실 앞 단어의 동어 반복입니다.
이유를 제시한 것이 아니란 것이죠.
하지만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93%의 학생이 복사기를 먼저 사용하도록 양보해주었던 것이죠. (정당한 이유와 단 1% 차이)
이 실험을 통해 우리는 양보를 이끌어낸 것은 합리적인 이유를 듣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서가 아닌,
“왜냐하면”이라는 단어에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3
이러한 인간의 맹점은 마케팅이 지향해야할 점을 명확하게 해줍니다.
우리의 생각 기저에는 인간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죠.
그리하여 인간 대부분의 행동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과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러한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무조건적인 합리적인 동물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죠.
고로, 마케팅 또한 인간의 합리성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되, 궁극적으로 비합리성을 극대화하는 활동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평소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긍정적인 경험은 신념과 믿음이 되어
굳이 묻고 따지지 않는 비합리성으로 돌변하여,
소비자들에 우리 브랜드를 쉽게 선택하도록 만들기 때문이죠.
고로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관성 있는 경험들로
뚜렷한 고정행동패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 할수록 있습니다.
마치 ’빠른 배송‘하면 ‘쿠팡’을 굳이 따지지 않고 떠올리는 것,
’혁신‘하면 ’애플‘이 떠오르게 하는 것 같이 말입니다.
마케팅은 ‘합리’역에서 시작해, 머나먼 종착역 ‘비합리’역으로 떠나는 머나먼 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