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리브라운 Sep 06. 2017

성공 가능성이 낮은 업무를 지시받으면...

'지시의 근원'에 따라 실행 여부를 결정해라

[사진 출처: 미드 '제5전선'(Mission Impossible)]





Question


올해 2년차 팀장입니다. 저희 본부에 신규 경력직 임원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회사 사정도 잘 모르시면서 의욕만 넘치셔서 걱정입니다. 최근 성공 확률이 거의 없는 프로젝트를 팀에 지시하셨습니다. 어렵다고 말씀드렸으나 막무가내십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Answer


아, 고민이 많이 되시겠어요. 제 주변에도 그런 일로 마음고생하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전해 들은 에피소드 몇 개 말씀드리죠.



(1) B팀장 사례

B팀장은 최근 경력직으로 입사한 상무님으로부터 새로운 온라인 사업모델의 전략을 수립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 사업은 애초에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은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상무님은 성공을 확신한 나머지 타 부서와의 충돌도 불사하고 이 사업을 밀어붙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사업은 6개월 만에 '폭망'으로 결론 났습니다. 그 팀 소속원들은 일부는 퇴사, 일부는 한직으로 발령받았고요. B팀장은 한직으로 밀려난 뒤 승진과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경력직 상무님은 퇴사했습니다.



(2) H팀장 사례

H팀장의 경우는 회장님의 지시 사항을 너무 충실히 이행해서 실패한 케이스입니다.

이 회사 상무님은 회장님께서 평소 구상하시던 사업모델을 구현하기 위해 새로 입사한 H팀장에게 신사업 프로젝트를 맡겼습니다. 회장님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던 상무님은 직접 H팀장을 불러 회장님의 구상을 자세하게 설명했고 이를 최대한 반영해 전략을 수립할 것을 지시했죠.

문제는 H팀장이 회장님의 지시 사항을 너무 충실히 이행했다는 점입니다. 전략을 고객 입장에서 수립해야 하는데 회장님 입맛에 맞게 수립한 거죠. 회장님 보고는 순탄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칭찬도 들었고요. 하지만 소비자들로부터는 철저히 외면을 당했고 사업은 완전 실패로 결론났습니다.

H팀장은 "전략은 강하지만 실행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버림받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다른 사업부의 전략 담당 팀장으로 영전했습니다.


1번 사례의 B팀장은 한직으로 밀려난 반면, 2번 사례의 H팀장은 살아남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영전했죠. 이처럼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 결정적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지시의 근원'이 1번은 월급쟁이 임원인 반면 2번은 오너였다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51% 정답'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성공 가능성이 낮은 업무를 지시받으면,
지시의 근원이 누구냐에 따라 따를지 말지를 결정해라



1. 지시의 근원이 월급쟁이 임원인 경우


지시의 근원이 오너랑 아무런 연고 없는 보통의 월급쟁이 임원이라면 가급적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특히 B팀장의 경우처럼 사내 기반이 없고 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경력직 임원으로부터 지시받았다면... 초반에 피하십시오. 일단 발 담그면 벗어나기 힘듭니다.


그분이 내 직속 상사라고요? 팀을 옮기는 한이 있더라도 벗어나야 합니다. 실패 가능성이 높은 업무는... 실패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말로 큰 행운이 깃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그리고 실패하는 순간 서로가 살아남기 위해 책임전가를 하기 시작하죠. 담당 임원은 '전략은 좋았으나 담당자의 실행력이 부족했다'는 식으로 둘러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대놓고 면전에서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죠. 담당 임원은 말로는 "내 책임이다"라고 하겠지만 '담당 팀장의 실행력이 실패의 큰 원인'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겠죠.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임원은 정말 좋은 전략을 수립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담당 팀장이 제대로 실행을 못했구나'라는 느낌을 받게끔요. 임원의 위치에까지 오른 사람 중에 이 정도 화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담당 임원 역시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결국 실패의 책임은 담당 임원과 팀장이 함께 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죠. 그렇게 되면 임원은 회사를 그만 둘 가능성이 높고, 함께 호흡을 맞춰온 팀장은 최악의 경우 대기발령 상태가 되거나 최선의 경우 새로운 임원 밑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업무를 맡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월급쟁이 임원이 천신만고 끝에 서바이브 하더라도 팀장까지 챙겨주지는 못합니다. 임원이 서바이브 했다는 것은 팀장에게 책임을 전가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챙겨주기는커녕 오히려 뒤통수를 쳤을 가능성이 높죠. 그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이 봤습니다.


K이사는 최근 자신이 강하게 밀어붙였던 프로젝트가 실패하자 그 책임을 담당 팀장에게 미루고 그를 다른 부서로 발령 조치했습니다. '프로젝트를 말아먹은 팀장'이라는 낙인과 함께요. 그러고는 경력직으로 새로운 팀장을 채용했죠. 마치 자기는 전혀 책임이 없다는 듯이. 전 팀장은 퇴사했습니다.


만약 월급쟁이 임원이 지시한 일을 거부한다면? 월급쟁이 임원은 자신의 지시를 거부한 팀장을 성심성의껏 미워하겠죠. 쏘우 왓? 그냥 그를 피해 다니면 됩니다. 어차피 업무가 실패하면 그 또한 입지가 흔들려 '자기 코가 석자'일 것이기 때문에 크게 상관없습니다. 그때까지만 피해 다니십시오.


상사의 지시를 거부하는 건 직장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요? 죄책감이 한없이 밀려들어 마음이 무겁다고요?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시죠.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업을 지시하는 것은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옳지 못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회사 지분이 많은 오너의 뜻이라면 뭐 어쩔 수 없죠. 어차피 그분 돈이니까요. (단, 회사 지분이 5%도 채 안되는데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경영권을 행사하시는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죠.) 하지만 그 지시가 회사 지분이 0.01%도 안 되는 월급쟁이 임원의 현실감 없는 의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임원이 주주님들의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다시 말해 배임!


약간 억지라고요?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행동해야 오래오래 서바이브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지시의 근원이 그냥 월급쟁이 임원이라면 가급적 피하는 게 상책이다.



2. 지시의 근원이 오너인 경우


반면 지시의 근원이 오너라면 무조건 따라야 합니다. 오너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지시의 근원이 오너인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앞서 H팀장의 경우도 상무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았지만 그 지시의 근원은 회장님이었죠.


'어차피 오너의 돈이니까 무조건 따르자'는 뜻에서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이보다는 또 다른 이유가 있죠.


대부분의 회사에서 오너께서 직접 구상하신 사업이 실패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오너께서 구상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1) 충분한 자원을 할당하고,

(2) 성공할 때까지 사업을 실행할 수 있도록 평가기간을 길게 잡아주고,

(3) 단, 30%만 성공하더라도 결과의 좋은 점만 부각하여 크게 성공한 것으로 포장하기 때문입니다.


오너가 구상한 사업이 실패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기회를 많이 주고 결과를 좋게 포장해주기 때문.


가령 사업의 성패 여부를 보통 1년 내에 판단한다면, 오너가 구상한 사업에 대해서는 1년 만에 성공 여부를 가릴 수 없으면 1년 더 지켜보고, 2년 만에도 성공 여부를 가릴 수 없다면 1년 또 지켜보고 하는 식으로 평가기간을 늘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 진행 중인 사업이기 때문에 현재 평가하기는 이르다"는 논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계속 어렵다면 "이 사업은 그룹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에 전체 큰 그림을 보고 판단해야지 이 사업 하나만 보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논리로 방어합니다. 아니면, "수익성 측면만 보면 좋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사업 시행에 따른 외부효과까지 함께 감안하면 오히려 순기능의 효과가 더 크다"는 주장을 펼칠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이 '완전한 실패'로 결론 난다면, "(오너께서 구상하신) 전략은 좋았으나 담당자의 실행력이 부족했다"며 실패를 담당 팀장의 탓으로 돌립니다. H팀장의 경우가 딱 그런 케이스죠. 결국 실패의 책임은 팀장의 몫입니다.


하지만 팀장이 온몸을 불살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 오너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른 팀장을 바로 내치는 경우는 드뭅니다. 아주 모진 회사가 아닌 경우에는 말이죠. (그런 회사도 있습니다만... ) 그 팀장은 비록 불가능한 미션이었지만 끝까지 도전해서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것을 경영진들이 어느 정도는 이해할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죠. H팀장처럼 말이죠.


그런데 만약 팀장이 오너의 지시를 거부한다면? 바로 찍히겠죠. 그러면 앞으로 회사생활 힘들어집니다. 그냥 퇴사하심이...


결론,

지시의 근원이 오너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3. 그러나 오너의 과제가 어려운 이유


하지만 오너로부터 직접 과제를 받았을 경우 무조건 지시만 잘 받들면 성공 실패와 관계없이 괜찮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사실 오너로부터 과제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큰 리스크입니다. 아주 잘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퇴사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상황이죠. 


먼저 오너의 과제는 성공 실패 여부를 떠나서 업무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직급이 높을수록, 또 나랑 직급 갭이 클수록 함께 일하는 것이 힘들죠. 하물며 기업의 최상층에 계신 오너의 경우는 어떻겠어요?


특히 오너의 경우에는 타협이나 설득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더더욱 힘듭니다. 아니, 오너에 대해 '타협'이나 '설득'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크나큰 불경이죠. 누가 감히 오너에게 현실과 타협하라고 할 수 있겠어요? 어느 누가 감히 오너를 설득할 수 있겠어요? 오너에게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불가능도 되게 하라'는 것이 그분들의 요구 사항이죠.


이런 이유 때문에 오너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아서 일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오너가 원하는 바와 현실 간의 간격이 클 경우 그 차이만큼 일은 더 힘들어집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오너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아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매우 힘들어하고 그중 상당 수가 중간에 나가떨어집니다. 오너에게 하도 많이 혼나 몇 달 사이에 몸무게가 10킬로그램 이상 빠진 임원도 봤습니다. 오너에게 너무 호되게 혼난 나머지 결국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신경쇠약에 걸리신 분도 봤습니다.


(3) J상무 사례

J상무는 회장님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아서 신사업 프로젝트를 하던 중 지나친 과로로 건강을 상해 결국 퇴사를 했습니다.   

회장님은 수년 전부터 이 새로운 사업에 대해서 높은 관심을 나타내셨으나 그룹 내 임원 중 그 사업을 선뜻 하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결국 그 업무는 경력직으로 입사한 지 얼마 안돼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J상무에게 떨어졌고, J상무는 매주 회장님의 불호령을 들으며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신사업이라면 당연히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죠. 하지만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본 경영진에서는 최소한의 투자만 허락했고 기존 조직과 인력을 활용해 사업을 진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각자 자기 업무에 바쁜 기존 조직으로부터 추가적인 업무 협조를 구하는 게 쉬운 일을 아니죠. J상무는 허구한 날 부서장들을 찾아다니며 지원을 부탁했지만 적극 나서는 분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회장님께 일러바칠 수도 없고요.

한편 회장님의 요구 사항과 만족 기준은 날로 높아만 갔고 현실과의 간격은 점점 벌어졌습니다. 결국 J상무는 '회장님의 이상'과 '열악한 현실' 간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고군분투했으나 지나친 과로로 결국 건강을 해쳐 퇴사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습니다. 성공 가능성이 낮은 업무는 일단 맡지 않는 게 최상책이죠. 하지만 맡게 된다면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임해야 합니다. 만약 성공 가능성이 낮은 업무가 월급쟁이 임원이 지시한 일이라면 죽기 살기로 피하고, 오너가 지시한 일이라면 죽기 살기로 수행해야 합니다.


아, 왜 이렇게 직장생활을 해야 하냐고요?


그게 바로 직장이라는 전장에 임하는 하루살이 직장인의 숙명이 아닐까요?


성공 가능성이 낮은 업무를 지시 받으면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 죽기 살기로 피하거나, 죽기 살기로 수행하거나. [사진 출처: 영화 '명량']



by 찰리브라운 (charliebrownkorea@gmail.com)





Key Takeaways


1. 성공 가능성이 낮은 업무를 지시받으면 '지시의 근원'에 따라 실행 여부를 결정해라.

2. 지시의 근원이 월급쟁이 임원이라면 가급적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그 근원이 오너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3. 그러나 오너로부터 과제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큰 리스크다. 아주 잘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퇴사로 까지 연결될 수 있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상황이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감하시면 다른 분들도 공감하실 수 있도록 공유 부탁드립니다.


이전 06화 모난돌 vs. 둥근돌 중 누가 더 유리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