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선택 - 회사에서 힘 좀 쓰는 부서 vs. 업계에서 인정받는 부서
취업준비생입니다. 회사의 어느 부서에 배치받아야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혹시 승진에 유리한 부서가 있나요? 흔히 말하는 좋은 부서와 나쁜 부서가 있나요?
취업준비생이나 아직 부서 배치를 받지 않은 신입사원이라면 충분히 궁금해할 만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일반화시켜서 답변하기에는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가 한번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Q: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중에서 어느 회사가 더 좋은 회사인가요?
정답은...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입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더 좋은 회사는 없습니다. 그냥 나한테 더 잘 맞는 회사가 나에게는 최고의 회사입니다.
마찬가지로 답변을 드리자면, 인정을 더 많이 받는 부서, 승진에 더 유리한 부서는 따로 없습니다.
먼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저한테 잘 맞는 부서가 제 동료한테는 잘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회사에 따라 다릅니다. A 제약회사의 경우 R&D 부서가 최고의 부서일 수 있지만, B 생명보험사의 경우 영업부서가 최고의 부서일 수 있습니다. 국가에 따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A 제약회사 미국 본사의 경우 R&D 부서가 최고의 부서일 수 있지만, R&D 기능이 없는 한국 지사의 경우 마케팅 부서가 최고의 부서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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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렇게 답변드리면 듣는 분은 좀 짜증 나실 겁니다. 저도 예전 기자 시절 어떤 질문을 했을 때, "그건 경우에 따라 다르죠"라든가 "그렇게 단순하게 답변을 드릴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에요"와 같은 류의 답변을 들으면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건 네가 고민을 안 했기 때문이야'라는 말이 목구멍 상단까지 올라왔지만 꾸욱 참았죠.
매우 어려운 질문이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51%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51% 정답이냐? 이 세상에 100%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100% 정답이더라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또 오늘의 정답이 10년 후에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한 51%만 정답이기 때문에 여러분께서도 제 주장을 100%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회사 사정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회사에는 '힘 좀 쓰는 부서'란 게 있습니다. 권한을 가진 부서 또는 회사 기밀을 알고 있는 부서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회사 별로 명칭은 상이할 수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비서실, 인사팀, 재무팀, 자금팀, 기획팀, 운영팀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러한 부서원들은 웬만해서는 승진에서 밀리지 않습니다.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부장까지는 연차가 차면 자동으로 승진되는 회사도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 해외 MBA에 가는 특권도 누릴 수 있고요. 연말 인센티브도 대체적으로 평균 이상은 보장됩니다.
제가 한 때 속했던 부서의 경우 계열사에 대한 사업 승인권과 임원 평가권 등이 있었는데 이 부서원들은 부장까지는 특진이 보장되었고, 보너스도 그룹 최고 수준으로 받았음은 물론 몇 년 근무 후에는 원하는 부서로 이동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또 이러한 부서원들은 웬만한 비리가 아니면 잘릴 리스크도 없습니다.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죠. 가령 모 그룹의 경우 재무팀 직원은 회사 돈을 유용해도 금액대가 엔간하지 않은 이상 해고될 위험은 없다고 합니다. 이 팀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다름 아닌 오너 비자금 관리이기 때문이죠.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잘릴 리스크가 거의 없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회사에 몸 담고 있을 때에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지만, 조폭 검사 기자와 마찬가지로 조직을 떠나는 순간 끈이 떨어져 나갑니다. 인사팀장의 권한은 '인사팀'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분의 'HR적 지식'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조폭 검사 기자와 마찬가지로 조직을 떠나는 순간 끈이 떨어져 나간다
하지만 개중에는 '조직의 힘'과 '개인의 능력'을 혼동한 나머지 자신이 속한 부서의 파워를 믿고 자신이 마치 대단한 사람인양 나대는 사람도 있죠.
또 하나 아쉬운 점은, 회사도 이들을 쉽게 내치지 못하지만, 이들도 회사를 쉽게 떠나지 못합니다. 이들이 보유한 지식이란 게 업계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회사 내에서만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직원 신상에 대한 정보가 그 회사 인사팀 입장에서는 엄청난 자산일지 몰라도 타회사 입장에서는 그다지 대단한 정보가 아닐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 힘 좀 쓰는 부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적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부 회사에 국한되는 경우이지만, 이러한 부서에서는 '그레이 에어리어(회색 지대)'에 속하는 업무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구조조정이라든가, 사업 몰아주기, 동료 직원 감시, 비자금 조성 등. 그래서 때로는 공정거래위의 타깃이 되기도 합니다.
일부 직원들은 노트북 하드 드라이브에 파일을 저장하지 않고 외장 하드 드라이브에 모든 것을 저장합니다. 여차하면 하드 드라이브만 갖고 튈 수 있도록 말이죠. 인쇄물은 보고 후 바로 파쇄기의 간식이 됩니다.
결론은,
부서 - 비서실, 인사팀, 재무팀, 자금팀, 기획팀, 운영팀 등
원천 - 권한 or 회사 기밀 보유
장점 - (1) 급여, 승진, 대우 등에서 사내 최고 수준 (2) 웬만해서는 안 잘림 (3) 사내 선망의 대상
단점 - (1) 조직을 뜨면 권한이 없어짐 (2) 이직이 쉽지 않음 (3) 일부 회사는 회색지대 업무 수행 가능성 존재
한편, 회사 내 권력 순위에서는 밀리지만, 업계에서는 '인재의 집합소'로 인정받는 부서가 있습니다. 전략팀, 마케팅팀, 상품개발팀, R&D팀, 법무팀, 홍보팀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 부서의 힘의 원천은 업계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지식 또는 전문성입니다. 이러한 부서원들은 자신이 속한 회사에 관계없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조직의 힘'은 약할지 몰라도 '개인의 능력'은 강하다고 할 수 있겠죠.
'조직의 힘'은 약해도 '개인의 능력'은 강하다
많은 분들이 M&A팀이 왜 여기 없는지에 대해서 갸우뚱하실 겁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대기업에 와보니 M&A팀은 많은 경우 투자은행, 회계법인, 법무법인, 전략 컨설팅펌 등에 외주를 주기 때문에 M&A에 필요한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모 회사의 경우 M&A팀장이 벨류에이션을 어떻게 하는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M&A를 '많이' 하면 '잘' 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었죠. 옷을 많이 사는 것은 돈만 많으면 누구나 할 수 있죠. 그렇다고 소비를 잘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나한테 잘 어울리고 내 옷맵시를 잘 살려줄 수 있는 옷을 남들보다 먼저 발견해서 사는 것이 진정 똑똑한 소비죠.
M&A를 '많이' 한다고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 등으로 한 회사의 M&A팀에서 다른 회사의 M&A팀으로 스카우트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M&A팀을 확대할 경우에는 경쟁업체 직원보다는 컨설팅펌 또는 투자은행 출신을 많이 고용합니다.
'업계에서 인정받는 부서'의 특징은 '업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업무 전문성'은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를 구분할 때 기준이 되는 전문성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전략팀, 마케팅팀은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에 더 가깝습니다.)
스페셜리스트 (Specialist) : 특정 분야에서 남들보다 전문적이고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사람
제너럴리스트 (Generalist) : 다방면으로 지식을 보유하고 여러 분야를 잘 접목할 수 있는 사람
그보다는 이 부서에 속한 사람들은 담당 업무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한정돼 있고 업무 외 '딴짓'을 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업무 전문성을 키우기 쉽다는 말입니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회사에서 힘 좀 쓰는 부서'에서는 타부서를 쫘서 일을 시킬 수 있지만, '업계에서 인정받는 부서'는 그 정도의 힘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일을 하며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어쨌든 전문성은 키울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은퇴 후에도 전문성을 살려 '1인 컨설팅펌'을 차릴 수 있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합니다.
남에게 일을 시킬 만큼의 힘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일해서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또한 이직이 쉽습니다. 가령 대부분의 회사에서 마케팅 전문가에 대한 수요는 항상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케팅 좀 한다'라고 알려지면 업계 스카우트 제의가 끊이지 않을 수 있죠. 그리고 이 분야에서 소위 '구루(Guru)'로 인정을 받는다면,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단점은 이러한 부서에서는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입니다. 인사팀의 경우 외부에서 경력직을 뽑는 경우가 적지만 전략팀이나 마케팅팀은 수시로 글로벌 컨설팅펌 출신들을 채용해서 기존 직원들을 긴장시키죠.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팀에 소속된 직원들은 프로페셔널 펌 출신의 경력직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고, 경력직 또한 한 동안 '미꾸라지' 역할을 하다가 새로운 '미꾸라지'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서원들은 스카우트 제의가 끊이질 않고, 경영진들도 이것을 잘 알기 때문에 아무리 실력이 출중하더라도 '이너 서클'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일 잘하는 넘'보다는 '믿을만한 넘'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직급이 올라갈수록 '일 잘하는' 분보다는 '믿을만한' 분이 필요하다
결론은,
부서 - 전략팀, 마케팅팀, 상품개발팀, R&D팀, SCM팀, 법무팀, 홍보팀 등
원천 - 보편적 지식 or 전문성
장점 - (1) 업무 전문성 배양 (2) 스카우트 제의가 많음 (3) 고위급 임원은 업계 최고 수준 연봉
단점 - (1) 치열한 경쟁 (2) 때로는 토사구팽됨 (3) '이너 서클' 진입 어려움
경험담
‘회사에서 힘 좀 쓰는 부서’와 ‘업계에서 인정받는 부서’ 중 어디가 더 좋을지는 여러분의 직업관에 달려 있습니다. 왕도는 없습니다.
저도 한 때 '힘 좀 쓰는 부서'에 있었는데 저랑은 맞지 않더군요. 당시 저는 혈기왕성한 30대였고 남들을 쪼는 것보다는 제가 직접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타부서 접대받는 것도 성향상 맞지 않았고요. 왠지 지금 실전 경험을 쌓지 않으면 40대에 실력 없는 꼰대가 돼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도 들었고요. 그래서 박차고 나왔죠.
40대인 지금은... 힘 좀 쓰는 부서 사람들한테 쪼이면서 언제 팽 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며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건대 30대 때 제가 복에 겨웠던 것 같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젊었을 때에는 ‘업계에서 인정받는 부서'에서 실력을 쌓다가 나이 들어서는 ‘회사에서 힘 좀 쓰는 부서'에서 파워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
그렇게 생각하면 제일 좋은 것은 강남 60평대 아파트에 살면서 벤틀리를 몰고 일주일에 20시간 일하면서 3억 연봉을 받는 거죠.
...
꿈 깨십시오.
by 찰리브라운 (charliebrownkorea@gmail.com)
1. '회사에서 힘 좀 쓰는 부서'는 사내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으며 해고될 리스크도 별로 없지만, 조직을 떠나면 권한이 없어지고 따라서 이직이 어렵다.
2. '업계에서 인정받는 부서'는 업무 전문성을 키울 수 있고 스카우트 제의가 많으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많은 경우 토사구팽 되고 '이너 서클'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3. 결국 '회사에서 힘 좀 쓰는 부서'와 '업계에서 인정받는 부서' 중 어디로 갈지는 여러분 직업관에 달렸다. 신중하게 선택해라!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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