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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리따 Dec 02. 2022

도와주고 나니 더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도움을 주면 생기는 일

당신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인가요?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는 어떤 편인가요? 모르는 사람 에게는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라'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래서 초등학생, 중학생일 때의 저는 도울 일이 있으면 나섰던 거 같아요.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일은 줄어들었습니다. 


일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이익, 이런 거 따지지 않았던 거 같아요. 일 하면서부터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대신해주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하려고 하지도 않고 떠 넘기더라고요. 이게 다른 팀일 경우에는 문제도 되었고요. 점차 머릿속에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와줘야 하는 일인가, 아닌가를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사회 뉴스에서 문제도 보이더라고요. 괜히 도와줬다가 곤란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어요. 아이들에게 도와줘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저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음 한편에는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도와주려고 해도 이제는 그런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기도 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아이들이 넘어지고, 다치고, 울며 엄마를 찾을 때 외에는 제가 옆에서 도와주는 일은 잘 없었어요. 그나마 자주 했던 일은 유모차를 끌고 오는 부모를 위해 문을 잡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11월 셋째 주 수요일,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주로 버스나 기차를 이용합니다. 가는 곳이 어디인지, 아이들과 같이 가는지에 따라 버스냐 기차냐 갈라지는 거 같아요. 

가는 곳이 강남 고속버스터미널과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일을 보고 다시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데 옆에 계신 할머니께서 

"아저씨, 영주 가는 버스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교?"

"이쪽으로 쭉 가시면 됩니다."

한 번 뒤를 돌아본 아저씨는 계속 걸어가셨어요.


저도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경북 영주니까, 얼마 전에 대구 내려가며 풍기를 지날 때 우리 가족이 크게 웃었던 에피소드도 기억이 나서 할머니께 모셔다 드린다고 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표를 사셨는지 여쭤봤어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표를 미리 예약해둬서 스마트기기에 익숙하지 못하신 분들이 버스를 한참 기다려야 하는 일도 봤었기 때문이죠. 역시나 미리 사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재빨리 폰을 꺼내 영주 가는 버스를 알아보았습니다. 다행히 자리는 넉넉했어요. 


그제야 할머니가 보입니다. 눈은 다치셨는지 오른쪽 눈에 보호대를 하고 계셨어요. 허리는 구부정하게 조금 굽으셨네요. 순간 외할머니가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허리를 많이 굽혀 걸어 다니셨거든요. 병원에 다녀오시는 건지, 자녀의 집에 다녀가시는 길인지 모르지만 한쪽 눈으로 낯선 서울길을 다니셨을 할머니의 발걸음에 맞춰 찬찬히 걸어갔습니다. 현장 예매 코너에서 차표를 구매했어요. 갑자기 풍기를 간다고 하시네요. 서울 사람들에게 풍기라고 하면 모를까 봐 영주라고 하신 거 같았어요. 풍기를 들렸다 영주로 가는 버스라 폰으로 알아본 시간은 똑같았습니다. 


차표를 보니 승차홈이 31번입니다. 대략 서울에 내리면 걸어 나오는 그 길 쯤일 거 같았어요. 많이 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미리 말씀드렸는데도 아직도 더 가야 되냐고 두 번은 더 물으신 거 같아요. 31번 숫자가 보입니다. 시간은 여유로웠고 버스 타기 전에 화장실도 다녀오면 편하니까 1층 화장실 위치도 알려드렸어요. 할머니께서는 식사를 안 하셨다며 식당에 들어가시면서 김밥 한 줄을 주문하셨습니다.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로요. 저도 아직 점심 전이지만 김밥 먹으러 같이 들어가면 기어코 사실 거 같아 앞에서 인사만 드렸네요.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먹을 수 있고 아이 하교 후 간식까지 가능한 음식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두과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간식으로 먹게 넉넉히 구매했어요. 뜨거워서 호호 불어가며 먹는데도 입천장은 데었네요. 누군가 제 팔을 툭툭 쳤습니다. 여자 두 명이 있었어요. 휴대폰 문자부터 보여줍니다. 다 한자로 되어있는데 '대전 복합터미널'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어요. 중국인일까 일본인일까. 그때, 'mai piao(표를 산다는 중국어 말)' 말이 들립니다. 


바로 앞에 기계로 표를 살 수 있었습니다. 버스 시간이 십 분도 채 남지 않아 현장 구매까지 가서 사기에는 불안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했지요. 기계에서 대전 복합 글자를 다시 확인시켜주며 표를 구매하는데 카드가 없어 결제하지 못했어요. 현장 구매를 갔었어야 하나, 어떡해야 할까 고민하다 제 카드를 꺼냈습니다. 그들에게 오만 원 권 몇 장과 딱 표값만큼의 만원, 천 원짜리가 있었어요. 표가 나오고 승차홈을 확인했어요. 이번엔 11번, 12번이네요. 


시계를 보니 2분이 채 남지 않았어요. 이 버스를 놓치면 안 되었기에 마음은 급해 중국말이 생각나지 않아 손짓하며 안내했습니다. 버스 타고 출발하며 11번 홈을 지나갔는데 다행히 그들은 이미 도착해 있네요. 아뿔싸. 버스가 지금은 없다고 미리 이야기해 둘걸 그랬네요.




할머니는 제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반면 중국인들은 그들이 요청했고, 티켓을 사고 결제까지 하는데 도움을 줬죠. 덜 도와줬다는 느낌이 남아있어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안 도와줬으면 여전히 제 마음은 불편했을 겁니다. 아이들에게도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걸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없었겠죠.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표를 끊는 데까지 같이 가고, 31번 홈까지 모셔다 드렸죠. 그 순간 그냥 그렇게 했습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표 구매하는 데 까지 도와줬어요.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저에게 도움을 청한 중국인들에게, 실외에 있던 저에게까지 와서 물어본 그들에게 그때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줄여왔던 도와주는 일을 하고 나니 괜히 마음이 가볍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며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통해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을 도와야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번에 이렇게 돕고 나니 글뿐만 아니라 이날처럼 머뭇거리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더 듭니다. 도와주고 나니 마음이 가볍습니다. 또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도움을 받아 고맙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번 일로 알았습니다. 덕분에 제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세 분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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