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은 이겼는데, 왜 마음은 안 움직였을까

한국 게임, 일본에서 통하는 것과 통하지 않는 것 <2편>

by Bella Son


한국 게임의 스토리텔링이 일본에서 얕게 읽히는 이유


어느 순간부터 일본 IP 콘텐츠를 접할 때마다 이상한 감각이 생겼다. 비주얼만 놓고 보면 한국 게임이 더 화려한 경우가 많다. 렌더링 퀄리티, 캐릭터 디자인, 연출의 스케일. 그런데 플레이를 마치고 나서 오래 남는 건 늘 일본 쪽이었다. 왜 그런지 한동안 말로 정리가 안 됐다.


지금은 안다. 비주얼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계관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였다.


한국 게임의 스토리는 대체로 빠르다. 도입부터 갈등, 클라이맥스까지 밀어붙이는 속도감이 있다. 유저를 붙잡아야 한다는 압박이 서사 구조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캐릭터는 강렬하고, 대사는 직접적이고, 감정은 크게 터진다. 그게 한국 유저에게는 통한다. 그런데 일본 유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에 들어간다.


일본 IP의 팬들은 세계관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산다.

원피스, 파이널 판타지, 포켓몬. 이 IP들이 수십 년을 살아남은 건 스펙터클 때문이 아니다. 유저가 그 세계에 속해 있다는 감각을 오래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규칙들, 명시되지 않았지만 느껴지는 캐릭터의 내면,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것 같은 여운. 일본 유저들이 IP에 수십 년씩 애정을 쏟는 건 그 세계가 믿을 수 있어서다.


현지화 과정에서도 이 차이는 반복됐다. 한국 원작의 대사를 일본어로 옮기면서 가장 자주 부딪히는 건 번역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캐릭터가 왜 이 상황에서 이 말을 하는지"를 설명할 맥락이 원작에 없을 때였다. 번역가가 아무리 자연스럽게 다듬어도, 동기가 납득되지 않으면 일본 유저는 캐릭터에서 빠져나온다.


사실 한국에도 세계관이 강한 RPG 시대가 있었다. 바람의나라, 리니지, 라그나로크. 그 시절 한국 온라인 RPG는 방대한 세계관과 서사를 품고 있었고, 일본 시장에서도 통했다. 그런데 모바일 시대로 넘어오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빠른 성장, 경쟁, 효율. 스토리보다 BM이 앞서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그 방향이 일본 시장과는 점점 멀어진 것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건,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드라마와 영화는 이미 증명했다.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고, 칸에서 한국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는 시대다. 스토리텔링 자체가 약한 게 아니다. 그런데 게임은 다르다. 같은 이야기를 유저가 직접 살아내는 매체에서는, 세계관의 밀도가 훨씬 더 깊어야 한다. 보는 것과 체험하는 것 사이의 간격이 생각보다 크다.


그래서 많은 한국 게임사들이 일본 IP를 찾는다. 이미 수십 년에 걸쳐 쌓인 세계관, 그 세계관을 오래 믿어온 팬덤. 오리지널로 만들기 어려운 것을 기존 IP에서 빌려오려는 선택이다. 그 판단이 틀린 건 아니다. 다만 빌려온 세계관을 게임 안에서 얼마나 제대로 구현하느냐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작가의 이전글일본 파트너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