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마을을 구하다

by 파슬리씨

몇 년 전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강사로 일한 적 있다. 방과 후 강사는 개인이 아닌 업체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도 업체 소속 강사로 일주일에 한 번 학교에 나가 일했다. 육 개월간 일하고 사정이 있어 그만두었는데, 그러고서 든 생각은 ‘또 하고 싶지 않다’였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 작은 학교라 수강생이 적어서 돈벌이가 안 되는데, 거리가 멀어서 기름값이 꽤 들기 때문이었다. 가는 길에 공사하는 곳은 어찌나 많은지 덜컹덜컹 달리다 보면 먼지를 뒤집어쓰기 일쑤고, 멀쩡히 있던 길이 갑자기 지도에서 사라지고 없는 날도 있어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싫은 것은 바로 그곳의 주차문제였다.


학교는 대중교통으로는 다닐 수 없는 위치라 자동차를 이용해야 했는데 주차장이 너무 작아서 갈 때마다 고민이었다. 방과 후 수업이 있는 오후에 주차장에 들어가면 이미 만차에 이중주차까지 다 되어 있어, 겨우 한두 공간만 남아 있었다. 나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빈자리에 차를 댔다. 다른 차들이 지나다닐 수 있게 차를 최대한 안쪽으로 붙이고, 기어는 중립으로 해두고, 당연히 연락처도 남겨두었다. 수업을 하다가 차를 빼달라는 연락이 오면 아이들을 자습시키고 달려가 차를 옮겨주기도 했다. 그런데 한번은 일찍 나가는 차들 때문에 앞뒤로 계속 움직인 내 차가 조금씩 밀려 통로 한가운데 떡하니 세워져 있어서 놀랐다. 미안한 마음에 달려가는데 앞서가던 사람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오늘은 이렇게 대놨어?”

나는 얼른 걸음을 늦추었다. 모르는 사이 나는 민폐 주차를 하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간의 일들이 눈앞에 지나갔다. 차에 탄 뒤 네비를 찍기 위해 잠시라도 지체하면 여기저기서 클랙슨이 울리던 것, 좁은 통로를 돌다 기둥을 긁었을 때 지나가던 직원이 놀란 걸 과장해 짓던 표정 등이 다 이유가 있던 것이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다니 맥이 빠졌다. 다른 곳에 주차할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근처 빌라에 방과 후 강사가 차를 대서 민원이 들어왔으니 절대 대지 말라는 안내문도 내려왔고, 아파트 상가에 주차했다가 경비 아저씨에게 혼났다는 얘기도 들어서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반발심이 생겼다. 내가 누구를 골탕 먹이려고 이중주차한 것도 아닌데, 왜 마음 졸이고, 미안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애초에 차를 이용하지 않는 강사를 뽑든가.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학기 중에 그만두는 것은 아닌 것 같아 학기를 마치는 날만 기다렸다. 그만두면 다시는 그 동네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 길을 오가며 딱 한 번 가슴 설렌 적이 있었다. 오지게 멀고, 길도 험하고, 교통체증까지 겹치는 날이면 당시 꽂혀있던 찰리 푸스의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영혼까지 마비시켜야 겨우 운전해갈 수 있던 그 길에서 나를 환하게 웃게 한 사람이 있다. 나는 오늘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학교 앞길을 빠져 나와 이름 모를 다리를 지나, 회전교차로 앞에서 우회전하면 차 한 대가 지날 수 있는 좁은 횡단보도가 나왔다. 그곳은 근처 중학교에서 하교하는 학생들이 많이 건너는 곳이었다. 신호등도 없는 곳이라 교복 입은 학생들이 길을 건너려고 서 있으면 나는 멈춰서 학생들이 먼저 가게 했다. 그런데 그날은 한 여학생이 내가 차를 멈추자 깜짝 놀라더니 나를 향해 머리 위로 큰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씩씩하게 감사하다는 말까지 하면서. 그런 인사를 받게 될 줄은 몰라서 나는 잠깐 렉이 걸린 것처럼 멍했다. 함께 길을 건너던 친구들이 여학생의 몸짓이며 말투가 재미있어서 함께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지나갔다. 뒤늦게 감동의 순간을 맞은 나는 얼른 손을 흔들며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팅한 유리 때문에 내 모습이 잘 보였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뒤로 그 횡단보도를 지날 때면 길을 건너는 중학생들 모두가 소중하고 기특하게만 보였다.


만일 나에게 능력이 생겨서 어떤 지역을 머릿속 지도에서 지울 수 있다면, 방과 후 수업을 했던 학교와 문제의 주차장, 그리고 다시 갈 일 없는 그 동네를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린 소녀가 그곳의 기억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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