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하철을 타러 역으로 가던 중이었다.
평소 다니던 대로변으로 가지 않고 안쪽 골목길로 꺾어 들어갔다. 그곳은 대형학원과 식당가가 있어 차도, 사람도 많이 다니는 길이었다. 길 양쪽에 빽빽이 주차한 차들로 복잡한 곳이기도 했다.
20대로 보이는 남자의 뒷모습이 차들 사이에서 나타났을 때 나는 흠칫 놀랐다. 뜨거운 날씨 탓인지 짧게 깎은 그의 머리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가 준비 자세를 취하나 싶더니, 이내 차들이 늘어선 골목을 날아가듯 달리기 시작했다. 걸어가며 보니 그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중이었다. 제법 속도를 탄 남자는 한 건물 뒤 켠, 시멘트를 발라 아찔한 경사로를 만들어놓은 곳에서 곡예 하듯 날아올랐다. 그의 차림새도 그렇고,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이라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혹시 촬영 중인가?”
아니나 다를까, 경사로 주변에 같은 연령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 모여있었다. 순간, 나의 눈은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탐색했고, 내가 그곳을 태연하게 걷고 있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카메라가 없고, 저 사람이 책임자구나 싶은 사람도 모르겠는 데다, 누구도 나에게 비켜달라는 눈빛을 보내지 않기에 어쩌면 촬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가면 방향을 꺾어 큰길로 나갈 예정이었기에 무심히 걷는데, 걸출한 목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촬영 중이니까 저쪽으로 가요.”
나는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젊은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건물 입구에 중년 남자가 간이 의자에 앉아 나에게 말한 거였다.
“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남자가 손짓을 하며 다시 말했다.
“촬영 중이라고. 여기로 다니면 안 돼요.”
예전의 나였다면 잘못한 것이 없어도 “어머, 죄송해요” 하며 최대한 벽 쪽으로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반말을 섞어 쓴 것이 기분 나빴고, 또 그가 젊은 쪽과 일행인 것 같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가 말한 ‘저쪽’이 어딘지 몰랐기에 발작 버튼이 작동했다.
“관계자세요? 왜 길을 못 가게 해?”
내가 뱉은 말에 비아냥과 반말이 섞여 있었다. 써놓고 다시 읽으니 <더 글로리>의 전재준 말투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내 속에 그렇게 성난 자아가 있는 줄 몰랐기에 내심 당황하면서도 중얼거렸다.
“여기서 대체 어디로 가라는 거야.”
젊은 사람들 곁을 지날 때 그들과 불편한 눈빛이 오갔지만, 거기서 더 얼굴을 붉히면 불리한 건 나일 게 뻔해서 조용히 큰길로 빠져나갔다.
전철을 타고 가는데도 계속 기분이 별로였다. 그들은 쇼츠 같은 짧은 영상을 제작하는 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촬영허가를 받거나 행인들을 통제하는 것을 생략했을 수도 있다. 최근에 드라마 촬영과 관련된 갑질이 워낙 이슈가 돼서 통제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들을 감안해서 찍고 편집하면 된다. 좋은 장소를 물색해서 촬영할 권리가 있다면, 동네 주민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고 걸어 다닐 권리도 있으니까.
촬영 중인 것을 미리 알 수만 있었다면 불쾌한 상황은 피했을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아이돌 가수가 출국하느라 사람들 길을 막았다고 해서 어이가 없었고, 납골당에서 드라마 촬영팀이 유족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고 분노했지만, 약자인 스태프 개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약해진다. 골목 초입에서만 말해줬어도 좋았을 텐데. 만약 나에게 촬영 중이니 가장자리로 걸어줄 수 있는지 물었다면 기꺼이 협조했을 것이다.
“오! 무슨 촬영인데요?”
오지랖을 부리며 손가락으로 ‘오케이’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미 걷고 있는 나에게 가지 말라고 하니 무안했던 것 같다. 나는 짐짝처럼 ‘저쪽으로’ 치워지고 싶지 않았다. 스태프도 아니고, 포스로 보아 약자도 아닌, 나에게 태클을 건 그는 대체 누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