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현관문이 삑삑대더니 아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반수를 해서 원하는 대학에 붙은 아들은 매일이 축제인 것처럼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외가 쪽 술꾼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웬만해선 마신 티도 안 내고 조용히 들어와 잤기 때문에 그날도 아들이 오거나 말거나 불 끄고 자던 중이었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아들 방이 아닌 안방으로 향하는 소리가 들리자 오늘은 좀 세게 달렸구나 하는데, 아들이 벽에 쿵 머리를 박으며 말했다.
“나, 핸드폰ㅇ ㅇ리허버렷…….”
눈이 번쩍 떠진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핸드폰? 어디서? 다……친 데 없어?”
덜컥 겁이 나서 물었지만, 아들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나 두기리에서 혼자, 진짜 무서웠어!”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 밤에 두기리는 왜. 계곡과 타운 하우스가 있고 맛집과 대형 카페가 서울 가는 나들목까지 드문드문 이어지는 그곳에 아들이 왜 갔을까. 아니, 그 밤에 거기서 집까지 어떻게 왔을까. 불을 켜고 살펴보았지만, 아들은 전후 사정을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다행히 다친 곳도 없어 보여 일단은 잠을 자게 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아들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다 금세 끊기고 받을 수 없다는 안내가 나오는 것이 누군가 전화를 끊은 것 같았다. 오기가 생겨 몇 번 더 해보던 나는 불현듯 상대가 전화를 받으면 어쩔 건데 하는 생각에 이르자 얼른 전화를 끊었다. 그 밤에 상대방이 두기리로 핸드폰을 찾으러 오라면 어쩔 것인가. 두기리도 우리 동네도 아닌 제 3의 장소로 오라고 하면? <악마를 보았다> 계보의 영화가 줄줄이 떠올랐다. 아들 폰에 깔린 토스와 은행 앱은 어쩔, 하며 핸드폰 분실 대응 요령을 검색했다. 먼저 통신사에 핸드폰 분실 신고를 하고, 지하철 분실물센터나 버스 차고지에 연락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페인에서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한 화려한 전적이 있음에도 마치 처음인 것처럼 안절부절못한 나는 부디 아들의 아이디로 가족과 지인까지 털리는 험악한 상황이 오지 않길 기도하며 밤잠을 설쳤다.
다음날 얼큰한 김치찌개를 먹고 상태가 좋아진 아들은 여유롭게 웃으며 간밤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지하철 막차에서 내린 아들은 버스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누군가 자신을 깨우며 내려야 한다고 하자 허둥지둥 내렸지다. 버스가 떠난 뒤 아이팟에서 음악이 멈춘 것을 알았고, 그제야 핸드폰을 두고 내린 것을 깨닫는다. 몇 번 버스를 탔는지, 내린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인적없는 거리를 걷던 아들은 뒤에서 택시 한 대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손을 들어 도움을 요청한다.
그 대목에서 다시 <악마를 보았다>가 떠올랐지만 나는 묵묵히 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택시 기사는 창문을 내리고는 무슨 일인지 물었다. 아들은 핸드폰을 잃어버렸고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며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택시 기사는 아들이 핸드폰과 함께 지갑도 털렸다고 판단했지만, 위기에 빠진 청년을 집 인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그렇게 아들은 택시를 타고 무사히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들이 카드를 내밀자 택시 기사는 “아, 지갑은 있었어요?” 했다.
의로운 택시 기사님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이야기를 듣고 감탄할 사이도 없이 우리는 아들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버스 회사를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주말이라 전화를 받지 않자 바로 차고지로 가기로 하고 차 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
네비게이션을 수없이 확인하며 아들을 태우고 처음 가보는 도로를 달리던 나는 오래전 나를 구해준 의로운 택시 기사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아들보다 한두 살 많던 그때 나는 술을 적당히 마시지 않고 술독에 빠졌다 나오는 일을 반복했다. 아무리 마셔도 가족들 눈치 못 채게 멀쩡하게 집을 찾아오고, 아침이면 또 멀쩡하게 일어나 단장하고 나가는 것을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 날은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 집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열두 시를 넘겨 이미 길에는 다니는 사람이 없었고, 친구는 나를 초등학교 뒷길까지 바래다주었다. 지나고 생각하니 그때 친구와 헤어진 곳과 멀지 않은 거리에 남자애들 무리가 있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애들이 나를 유심히 보는 걸 알았지만 술에 잔뜩 취해 있어서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그냥 걸었다.
학교 뒷길은 가파른 오르막길이고, 길을 따라 학교 담장이 쭉 이어져 밤에는 다니기 꺼려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얼큰하게 취해서 친구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며 혼자 웃다가 중얼대다 했다. 그러다 내가 살짝 휘청한 순간 누군가 달려와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 순간에도 위험한 걸 모른 채 나는 단지 짜증이 난다는 이유로 몸부림을 쳤다. 그러자 거센 팔뚝은 내 목을 감고 압박했다. 나는 팔을 풀고 벗어나려고 했고, 팔뚝은 어떻게든 나를 넘어뜨리려 했다.
그때 택시 한 대가 전조등을 환하게 밝히고, 클랙슨을 울리며 오르막길을 달려왔다. 놀란 중학생들은 골목길로 도망쳤고, 갑자기 풀려난 나는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택시 기사님은 창문을 내리고 나에게 무슨 일인지, 다친 데는 없는지 물었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서 네, 괜찮아요, 했을 뿐이다.
만약 그때 택시가 오지 않고 내가 뒤로든 옆으로든 넘어졌다면, 그래서 어딘가로 끌려갔다면, 그다음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 뒤로 인사불성이 되게 마시지 않는다. 물론 취한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잘못됐지만, 내가 그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인다.
아들의 핸드폰은 버스 회사 사무실 책상에 다른 분실물과 함께 놓여있었다. 폰에 붙은 메모지에는 아들의 말과 일치하는 버스 번호와 시간이 적혀 있었다. 아들이 핸드폰 배경 화면을 말하자 직원은 바로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아들은 이렇게 될 줄 알아서 크게 걱정도 안 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찾은 기념으로 산채비빔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 표정이 얄미워서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나는 꾹 참고 말했다. 아들아, 가끔 인생이 경고를 보낼 때가 있거든. 그러면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단다. 오늘은 쉽게 찾았지만, 다음은 아닐 수도 있어. 작작 마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