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샤의 메시지

by 파슬리씨

“팀장님! ‘헬로 터틀스’ 써 봤어요? 어때요?”

전표를 확인하러 온 개발팀 이 대리가 정효와 눈이 마주치자 물었다.

“어…, 헬로 터틀? 잘 쓰고 있지.”

정효는 깜빡한 걸 감추려고 일부러 환하게 웃었다. 후텁지근해진 날씨 탓에 셔츠에 닿은 피부가 트적지근했다. 이 대리는 정효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괜찮죠? 그거 대박 날 거 같지 않아요?”

“어! 맞아.”

정효는 부채질을 하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하늘이 묵직하게 내려앉은 걸 보니 오후엔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았다. 헬로우 터틀스는 파충류의 언어를 번역해주는 어플이었다. 반려견의 언어를 통역해주는 앱이 인기를 끌자 반려동물의 범위를 확장하기로 한 것이다. 물거북을 키우는 정효가 앱을 테스트하기로 했는데 사실 거의 신경을 못 썼다. 애초에 이구아나나 거북을 키우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과연 파충류가 수집하고 분석할 만큼 다양한 소리를 내는지 정효는 반신반의했다. 이 대리가 물었다.

“특별한 건 없었어요?”

“아직까진 없는데…, 좀 볼까?”

정효는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어플이 수시로 알림을 보내오지만, 확인을 안 한 지가 여러 날이었다. 파충류가 내는 소리를 AI에게 학습시켜 번역 체계를 구축하는 방법은 개나 고양이의 방식과 같았다. 마이크를 어항에 설치해 발생한 소리를 녹취한 뒤 어플로 음성파일을 보내면 번역한 내용을 문자로 알려준다. 사샤가 처음 건넨 말은 이거였다.

“당신은 나의 할머니.”

정효의 엄마를 보고 한 소리였다. 초기 치매 증상을 보이는 엄마를 정효의 집으로 모셔왔는데, 유달리 사샤를 예뻐하고 사료를 챙겨줬더니 그렇게 말한 것이다. 정효와 중학생인 딸은 핸드폰에 찍힌 메시지를 보고 어이가 없어 웃었다. 문어도 지능이 높아 사람의 얼굴을 알아본다던데 머지않아 어류나 무척추동물과도 문자로 소통하는 시대가 올까?

정효는 어플을 열어 “사샤”라는 이름의 폴더를 터치했다.

“큰일 났어요, 엄마!”

순간 정효는 딸이 보낸 메시지인 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내 어항에서 온 메시지라는 걸 깨닫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메시지와 함께 ‘음성파일이 자동으로 클라우드에 업로드’되었다는 알림도 와 있었다. 보통은 일주일에 한 번씩 업로드되는데, 최근 세 시간 동안 용량이 넘칠 만큼 사샤가 많은 소리를 냈다고? 어항 속에 쿠데타라도 있었나? 정효는 메시지를 열었다.

큰일 났어요, 엄마! 할머니가 집을 나갔다. 잠옷 입고. 나는 베란다에, 할머니는 현관문으로 나갔어요. 사샤가 왜 베란다에 있나요. 엄마는 궁금해요. 할머니가 매일 아침 나를 어항에서 꺼내요. 너도 답답합니까? 할머니가 물어요. 나는 물속이 좋아요. 물은 따뜻하고 편안합니다. 일광욕은 잠깐이면 굿. 할머니는 나를 꺼내 놓고 잠들어요. 그러면 나는 등껍질이 후끈, 목구멍이 바싹. 할머니는 시골이 그리워요. 서울은 미세 먼지 범벅, 목구멍이 간질간질. 엄마는 회사에서 메시지를 확인합니다. 사샤는 지금 어항 밖에 있어요. 목이 마르고 마이크가 멀어. 메시지를 보면 달려옵니다. 할머니가 집을 나갔어요. 할머니 가출. 할머니를 구하고, 늦지 않게 와요. 사샤를 구해요. 기다릴게요. 엄마.

멀리서 천둥이 울대를 가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팀장님, 무슨 일 있어요?”

이 대리가 정효의 굳은 얼굴을 보며 물었다. 정효가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서자 의자가 뒤로 밀려 서랍장에 부딪혔다. 정효는 창밖으로 막 떨어지기 시작한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최근에 엄마가 눈에 띄게 말이 없고 우울해진 걸 알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세포 임플란트 시술로 기억을 복원하고, 환자의 위치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했지만 바쁘고 피곤해서 계속 미루고 있었다.

“나 좀 나갔다 올게.”

정효의 말에 이 대리가 옆으로 비켜섰다. 사무실을 빠져나가며 정효는 어디로 전화를 걸까 하다가 경찰서에 신고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엄마의 인상착의는 분명했다. 잠옷 바람에, 우산도 들지 않은 70대 여인. 누군가는 주의 깊게 볼 것이다. 부디 안전한 방법으로 경찰에 인도되길. 엘리베이터에 탄 정효는 주차장이 있는 지하 1층 버튼을 연달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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