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계절의 경계
죄책감은
한 번의 선택에서 생기지 않는다.
사소했던 말들,
지나간 표정들,
그때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 한꺼번에 돌아온다.
아빠는 보증 섰던 돈을 마련해
나에게 갚으려 했다.
그 돈을 보이스피싱으로
하루아침에 잃었다.
절망에 빠진 아빠에게
나는 또 화를 냈다.
“왜 그런 걸 당해.
도대체 왜 그렇게 살어.”
그래도 뒤에서는 변호사를 알아보고,
경찰과 법무사를 만나고,
합의 조정까지 뛰어다녔다.
아빠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둘째를 출산한 직후였고,
신생아와 어린 아이 둘을
혼자 돌보고 있었다.
사실 아빠의 일이 아니었어도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이미 한계에 와 있었다.
아빠는 밤마다 전화를 했다.
“우리 딸이 최고다.”
“우리 딸은 얼굴도 예쁘지.”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말이 이런 거지.”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를 끊기 일쑤였다.
술 먹고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며
핀잔을 주기 바빴다.
어느 날,
불쑥 집에 찾아온 아빠에게
나는 사과만 깎아 안주로 내놓았다.
“딸, 아빠 안주로 이게 뭐냐.”
나는 말했다.
“아빠는 왜 맨날 나만 보면 술을 먹어.
할 말 있으면 맨 정신에 하면 안 돼?”
아빠는 소주 한 병을 조용히 마시고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사실 이런 일은 한 번이 아니었다.
몇 개월에 걸쳐 여러 번 반복되었다.
술을 마시며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알던 아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사람이었다.
내향적인 아빠가 선택한 방식이
술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이기적이게도 그때의 나는
내가 힘든 것만 보였다.
왜 나만 이렇게 버거운지,
그 생각이 아빠의 얼굴 앞에서 더 선명해졌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예민했을까.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 삐딱한 시선으로
아빠를 바라보았을까.
사과 대신 밥상을 차려주었더라면,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더라면.
그랬다면
‘죽음’이라는 단어에서
조금은 멀어질 수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아쉽지만
시간은 절대 뒤돌아가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안다.
그때의 나는 무심했던 게 아니라,
이미 너무 지쳐 있었다는 걸.
그럼에도 죄책감은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그래서 자살유가족의 죄책감은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감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