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이틀 전, 나는 아이 둘을 데리고 찾아갔다

1부. 계절의 경계

by 벨라콩

나는 아직도 죄책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보다는 내 잘못이 아니다는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삶 전체로 놓고 보면
그날은 하나의 사고였다고 생각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내 죄책감은
선택지가 많았다는 이유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빠가 자살로 죽기 이틀 전,
나는 한 주 내내 극심한 불안 속에 있었다.
아빠는 일을 제대로 나가지 못한다고 했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결혼 전, 이미 한 번의 자살 시도가 있었기에
나는 아빠의 불안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 둘과
아빠가 유난히 좋아하던 우리 집 강아지까지 데리고
아빠가 사는 곳으로 한 시간 반을 달려갔다.


그날의 날씨는 묘했다.
가만히 있으면 선선했고,
조금만 움직이면 덥다가
금세 다시 추워졌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아빠 숙소 앞이야.
애들이랑 놀이터에 있는데, 밥 먹자.”


아빠는
“귀찮다, 돌아가라”는 말만 반복했다.


사실은 걱정이 되어 간 것이었지만,
나는 결국 화부터 냈다.


세 살쯤 된 아이는 쉬지 않고 뛰어다녔고,
몸에는 몇 개월 된 아이를 안고 있었고,
손에는 강아지 목줄이 쥐어져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도 마음도 버거워졌다.


무작정 찾아가는 건 싫어할까 봐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빠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돌아왔다.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생각은 늘 같은 자리에 머문다.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문 앞이 아니라 집 안으로 들어가
“괜찮냐”라고 한 번만 물었더라면.


그랬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그 질문은 여전히 몸 안에 남아 있다.


다만 이제는 그 죄책감을 밀어내기보다는
조금씩 인정하며 살고 있다.


없던 감정처럼 지우지 않고,
그대로 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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