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전 날

1부 계절의 경계

by 벨라콩

당시는 6월 5일, 현충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달력은 초여름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바람은 아직 계절을 결정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움직이면 더웠고, 멈추면 서늘했다.
그 애매한 공기 속에서

하루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무너졌다.


지금은 겨울이다.
바람은 차갑고, 공기는 단단하다.

그런데 그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계절은 한순간에 되돌아온다.

햇빛이 떨어지던 각도, 공기의 밀도,

피부에 닿던 온기까지.
기억은 때때로 몸을 앞서고,
몸은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과 잊지 못하는 몸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해 걷는 사람처럼 어긋난다.


사건이 있던 아침,
아홉 달 된 아이와

네 살 된 첫째는 방에서 자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절대로 먼저 눈을 뜨지 않았을 텐데,
그날은 이유 없이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설명하기

어려운 공포가 밀려왔다.
아직도 그날의 내가 선명하다.

우리 집은 햇볕이 잘 든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을 걸어도 신호음만 갈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에도 답이 없었다.

나는 집 안을 서성이며
한 시간 넘게 온갖 생각을 반복했다.


예전에도 아빠는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무슨 소란이냐, 죽게 좀 내버려 두지”라

말을 들었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일까.
어디선가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데
괜히 민망해질까 봐 전화를 안 받는 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해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과

해는 계속 오르는데

나만 멈춰 있는 듯한 기분에
결국 112에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는데,
몇 년 전 자살 시도를 하신 적이 있어서요.”
차 번호를 말하며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신고 후 10분, 15분쯤 지났을까
아이들이 깨어나 거실로 나왔다.
“엄마 혼자 뭐 해?”
손이 많이 가던 네 살 첫째와
늘 해맑아 아빠가

‘쟤는 왜 저렇게 웃기만 하냐’고 말하던 둘째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잠시 후 전화가 걸려왔다.
“정말 유감입니다.”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하는

여경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아빠는 트럭 안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이어 ‘사후경직’이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나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사후경직이요?
병원에 빨리 데려다주시면 안 될까요?
응급실에 가면 심장... 그거,

해주시면 안 되나요?”

되묻고, 부정하고, 다시 되묻는 동안에도
그 단어는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경찰은 조용히 말했다.

“이미 사망하신 지 몇 시간

지난 것으로 보입니다.
죄송합니다.”


그제야 알았다.
설명조차 필요 없는 형태의 결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