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확신 없는 관계는 피상적이라고 했다가 나치식의 폭력적인 발언이라며 한소리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욕을 먹고도, 난 여전히 그 생각에 유효하다.
누군가에게 확신을 갖지 않고서야, 상대를 깊숙이 알아가고자 하는 의지나, 나의 구석구석을 상대에게 거짓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생길 리 없다. 누군가에게 확신을 가져야만, ‘진짜’ 서로를 제대로 알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확신이란 건 상당히 주관적이니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실제로 몇 번 틀리기도 했고. 허나, 틀린 확신에서도 뭔가를 제대로 배우긴 했다. 그중 제일은 확신은 그냥 아무에게나 떡 주듯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딱 봐도 각 재고, 계산하는 게 보이는 사람에겐 내 패들을 죄 꺼내 보이고 싶지 않으니, 이들에겐 제대로 된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나는 지금의 남자친구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왜냐하면 내가 그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아주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난 ‘남자’인 그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한 사람’으로서의 그, ‘누군가의 아들’, 또는 ‘누군가의 친구’로서의 그를 사랑한다. 난 그의 외모와 다정한 성격을 좋아하지만, 그의 구겨진 구석 없는 건강한 가치관과 책임감을 존경하며,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몽글몽글해지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애틋하다. ‘널 사랑해!’라는 말로 이 모든 걸 담기에는 숱하게 쓰이는 그 표현이 어설프다. 당연하게도 그에 대한 확신이 들기까지 여러 날과 계기가 필요했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이다. 그와 크고 작은 다툼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문제를 덮어두거나 서로를 비난하기보다는 탁자 위 물체를 관찰하듯, 관계의 테이블에 이를 올려두고선 대화를 시작한다. 끝내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다정한 그가 나의 서운함을 토닥여준다. 예전엔 누군가와 다투면 상대와 나 사이의 문제가 ‘레알 문제’라고 느껴졌는데, 그와 대화하고 나면 문제라 여겼던 것이 그저 아기자기한 것이 되고 만다.
이러니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