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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zam Jun 04. 2024

절필

 돌이켜보면 나는 주로 개인적인 상황이 좋지 않거나,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웠을 때, 글을 썼다. 대학생 땐 스스로에 대해 좀 제대로 이해해 보려고 오랜 기간 일기를 썼는데, 문자로 내 감정과 생각을 적어 내리면서, 또, 그 글들을 미래의 내가 다시 읽어보면서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예로, 글쓰기를 통해 복잡했던 감정과 생각이 정리된다는 것, 걱정은 지나치게 과장된 경우가 많다거나 과거의 내 생각들도 꽤나 합리적이었다는 것 등..


 근래엔 감히 '절필'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글을 전혀 쓰지 않았는데, 이 짧디 짧은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휘와 문장구성이 예전만 못하다 느끼고 있다. 절필의 사유는 아무래도 대나무숲에 소리치듯 쏟아내지 않아도 지금 정서적으로 꽤나 안정됐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나로선 좋은 것이다.


 날 힘들게 했던 상황, 우울감, 걱정과 불안들은 글 속을 떠다니다 사라졌다. 지나와보니 사실 이 모든 것 중 상당 부분은 못된 사람과 어울리다 생겨난 지저분한 찌꺼기들이었다. 세상엔 자신의 불완전함을 전혀 관련 없는 상대에게 끼얹어 해소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으니까. 내 것도 아닌 타인의 오물을 잔뜩 뒤엎고 있을 땐 당황스러움에 상황판단이 되지 않은 채 그것들을 온전히 느끼게 된다. 그때 글을 쓰면 그 사람도, 나도 아닌, 제3자의 전지적 시점에서 이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어차피 불완전은 그들의 몫이고, 나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걸 알게 되니, 온전히 자신의 몫인 오물들을 여기저기 흩뿌리는 사람들에게서 신경 끌 수 있게 됐고, 자연스레 해소해야 할 찌꺼기들이 남지 않아 글을 쓰지 않게 됐다.


 요즘, 짧은 인생이 비 오는 날 손에 쥔 솜사탕처럼 느껴져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다시 일기를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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