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나는 그 친구를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까

by 양별

친구가 죽었다. 어느덧 10여 년이 흘렀다.

대학교 2학년 1학기,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봄날이었다.


그 친구는 귀여운 푸들처럼 머리를 잘게 파마했고, 가녀렸고, 그때 인기 많았던 무쌍(쌍꺼풀이 없는) 연예인을 닮았다.

처음에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지만,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제법 잘 맞는 사이가 있지 않은가. 알게 된 지 한 달째, 우리가 그런 사이가 되었다. 매번 붙어 다니지는 않아도,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하는 사이.


그 친구는 내가 강의실에 들어서면 저 멀리서 익살스럽게 노려보고는, “양별이 왔냐!”라며 내게 쪼르르 달려왔다.

반가우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영할 것이지 오히려 눈을 찌푸리고 입술을 쌜쭉이는 그 모습이 너무 어이없고 웃겨서, 나도 그 친구 앞에서는 자주 눈을 찌푸리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서로 별 이야기한 것도 없는데도 그냥 웃음이 났다.


언젠가 좀 더 친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중간고사를 앞둔 어느 봄날 그 친구가 죽었다.

그 친구가 주로 앉던 맨 앞자리에는, 그 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가 놓아둔 국화꽃이 대신 앉았다.

작고 여린 체격과 달리 호탕하고 쾌활한 성격 덕분에 인기가 많았던 그 친구는, 그 많은 친구들을 뒤로하고 먼 길을 떠났다.


웃기게도 나는, 부고 문자를 받고 나서 오래 고민했다.

당장 내일 시험이 있는데, 장례식장에 다녀올 시간이 있나? 한 번도 장례식장 가본 적 없는데, 장례식 예절은 언제 공부하지?

그런데… 내가 그 친구와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인가?

여러 현실적인 고민 끝에 결국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나 말고도 많은 친구들이 갔을 거라 생각하며 위안 삼았다.


그 후로 10여 년, 그사이 이제 장례예절 정도는 더 이상 공부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러 장례식에 가게 되었다.

그렇게 별 탈 없이 일상을 살다가 문득, 내가 가지 못했던.. 아니, 가지 않았던… 그 단 하나의 장례식이 종종 떠오를 때마다 괴로워졌다.

그 학점 하나가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준다고, 그 친구 가는 길에 마지막 인사 하나 건네지 못했던 걸까. 그 순간의 선택을 끊임없이 자책한다.


우리가 같이 들었던 수업은 경영학이었지만, 그 수업을 가르치신 교수님의 학부 때 본 전공은 철학이었다.

친구의 죽음 이후였던가, 이전이었던가. 교수님은 문득 장례식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장례식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산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장례식을 통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경계가 생기고, 애도기간을 통해 비로소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떠나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였구나. 내가 그 친구를 지금까지 떠나보내지 못했던 건. 그렇다면 장례식장에 가지 않은 나는 그 친구를 어떻게 떠나보내야 하는 걸까.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그저 몇 가지 바랄 뿐이다. 내세가 있다면 그 친구가 다시 한번 그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태어나, 이전 생에 넘치게 받았을 사랑을 더 넘치게 받기를.

그리고 나를 보면 또 한 번 찡긋 웃어주기를.

별일로는 서운해하지도 않을 성격이지만, 그래도 어렸던 그때의 날 용서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