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만은 잊지 않을게
자주 잊는다. 원래도 그랬고, 요새 부쩍 심해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상대에게, 그리고 상대가 내게 어떤 말을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종종 똑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되묻는다.
자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해 서운해하는 누군가에게는
겉으로 한껏 미안한 표정을 짓고,
속에서 터져 나오는 질문을 삼켜내기도 했다.
‘그래서 너는 나의 모든 걸 기억하니?‘
슬쩍 털어놓자면 난 타인의 구체적인 특징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올리비아 핫세가 자신의 눈동자 색을 맞춘 유일한 남자와 결혼했다고 하던데,
그 방식 대로면 난 틀렸다.
난 누구의 눈동자 색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다만 갈수록 또렷해지는 것은 감정이다.
상대와 함께 하면서 느꼈던 나의 감정.
감정 또한 무수한 행동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겠지만
그 모든 행동 중 하나가 잘못되었다고,
진작 두터워진 감정이 쉽게 변질되지는 않는다.
난 이 방식이 좋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감정 만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를 울고 웃게 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해도
그 시간을 함께 한 상대와 공유한 감정만은 누구보다 잘 기억할 자신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