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으로 Jan 17. 2023

열정과 용기 넘치는 여인들의 와인

도전정신과 용기, 열정 넘치는 여인들을 위한 와인

1805년 프랑스의 한 지방.

한 여인이 있다. 그녀는 방금 남편을 잃었다. 7년간의 짧은 결혼생활. 아직 많은 날을 함께 해야 하는데 남편은 너무나도 서둘러 곁을 떠나 버렸다.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고, 슬픔보다 깊은 상실감에 한없이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슬퍼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남편은 이제 없지만 남편의 가업은 남아 있었다. 시아버지로부터 남편 프랑수아가 물려받은 그 사업은 이제 그녀의 몫이었는데 19세기 프랑스에서 27살의 미망인이 동등한 사업가로 인정받으며 일하는 것을 쉽지 않을 일이었고 그녀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녀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특유의 열정과 과감성으로 사업을 이끌었고 결국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바르베 니콜 퐁샤르당'. 프랑수아 클리코와 결혼하여 '마담 클리코'로 불리었고 남편을 잃은 후에는 '과부'라는 뜻의  프랑스어를 넣어 '마담 뵈브 클리코'가 되었다. 그녀는 바로 최상의 품질로 인정받는 샴페인 '뵈브 클리코'를 만든 장본인이다. 뵈브 클리코 하우스는 1772년 필립 클리코 뮈롱이 설립하였는데 전성기를 만든 것은 바로 마담 클리코이다. 


뵈브 클리코의 상징은 노란색 레이블.


샴페인은 레드 품종인 피노 누아와 피노 뫼니에, 화이트 품종인 샤르도네를 베이스로 만드는 와인이다. '샴페인'이라는 용어는 오직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만든 스파클링 와인에만 사용할 수 있다. '스파클링 와인=샴페인'이라고 혼동하고 있는 분들을 자주 보는데, 샴페인은 '스파클링 와인'의 한 종류이고 모든 스파클링 와인이 샴페인은 아니다(스파클링 와인을 스페인에서는 까바, 독일에서는 젝트, 이탈리아에서는 프로세코라고 부르는데 그 양조 방법과 포도 품종, 맛에서 차이를 보인다.). 


 샴페인은 손수확-압착-1차 알코올 발효-혼합-2차 알코올 발효-숙성(효모 자가분해)-돌리기-배출 및 봉인-추가 병숙성을 거쳐 생산되는데, 이같이 복잡하고 섬세한 양조 과정 중 '돌리기(Remuage)'와 '배출(Disgorgement)'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샴페인 특유의 부드러운 기포가 보이는 밝은 금빛의 탁도는 이 과정에서 와인병 안에 남아있는 효모 찌꺼기를 얼마나 많이 제거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 발효가 끝나면 효모는 죽어서 병안에서 앙금 침전물을 형성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서 죽은 효모가 분해되면서 와인에 빵, 비스킷, 토스트 향 같은 고유의 풍미를 부여한다. 샴페인의 양조과정을 '전통 방식'이라고 부르는데, 샴페인과 같은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스페인의 까바에서 이런 효모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와인의 향과 맛을 풍부하게 만드는 효모 자가분해는 평균적으로 4-5년, 길게는 10년까지 지속되기도 하는데, 이런 앙금과 오래 접촉한 와인일수록 강렬한 향과 신선한 풍미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샴페인 양조과정에서 앙금과의 접촉은 와인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지만 반면에 찌꺼기가 와인에 계속 있을 경우 와인이 탁해질 뿐 아니라 찌꺼기가 입에 걸려 마시기도 불편하기 때문에 샴페인 하우스들은 그 찌꺼기를 최대한 깔끔하게 제거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거름망에 와인을 부어 효모만 싹 빼내고 싶겠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기포와 특유의 풍미가 날아가 버릴테고, 병을 최대한 거꾸로 세워서 효모를 입구쪽으로 모아서 빼내는 방법은 찌꺼기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상당량의 와인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만 했다. 어떤 방법이든 그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태우는' 격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샴페인은 효모 찌꺼기 때문에 탁하고 거품도 거칠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기에 으레 그러려니 했지만 마담 클리코는 그럴 수 없었다. 결론부터 미리 얘기하면 결국 그녀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이 문제를 해결했고 오늘날 우리가 '샴페인'하면 떠오르는 고유의 섬세한 기포와 금빛 혹은 레몬빛을 띠는 청량한 색감은 모두 마담 클리코의 공이다. 


 그럼 수많은 샴페인 하우스의 골머리를 앓게 한 이 난제를 그녀는 어떻게 해결한걸까? 해법은 바로 'A'자에 있었다. 

 마담 클리코는 찌꺼기를 제거하기 쉽게 병을 거꾸로 세워서 걸어놓을 수 있는 A자 모양의 틀인 '뿌삐뜨르(Pupitre)'를 고안해낸다. 나무로 된 큰 틀에는 여러 병의 와인병을 비스듬한 각도로 거꾸로 꽃을 수 있는데 이 병을 매일 조금씩 돌리면 중력의 힘으로 와인 전체에 퍼져있던 찌꺼기들이 점점 입구로 모이게 된다. 이 과정을 르미아주(remiage) 혹은 리들링(riddling)이라고 하는데 수많은 와인병을 하나하나 사람의 손으로 9개월에서 5년 이상 해야 하는,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는 고단한 작업이다(지금은 '기로팔레트'라는 자동 기계가 상당부분 대신하고 있다). 


  그래도 이 과정을 통해 샴페인은 찌꺼기를 (효모의 특성상 끈적거려서 약간 남기는 했지만)이전에 비해 월등히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었고 샴페인의 맑기와 기포의 느낌도 상당히 개선되었다(여담으로 지금은 병목에 모인 찌꺼기를 급속 냉동 시킨 후 병 마개를 열어 효모 찌꺼기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더욱 맑은 샴페인을 맛 볼 수 있다).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리들링 테이블을 고안하고 도입한 것만 보아도 마담 클리코가 얼마나 과감하고 용감한 경영인인지 알 수 있다. 그녀의 이런 특성은 마케팅에서도 드러났는데 1814년 나폴레옹과 앙숙이었던 러시아는 프랑스 제품 수입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적극적으로 영업하여 러시아 황실에 약 10만 병에 이르는 샴페인을 판매하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그녀는 매년 7천통 이상의 편지를 쓸 만큼 지속적으로 거래처를 관리하고 홍보한 것을 알려져 있다. 마담 클리코는 1866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60년 동안 샴페인 하우스를 훌륭히 경영하였다.  


 마담 클리코처럼 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와이너리를 성공적으로 이끈 또 한 명의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패트리샤 브라운'.  스코틀랜드 이민자였던 존 프란시스 브라운은 1885년 호주 빅토리아주 밀라와에 있는 4헥타르의 포도밭에 포도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4년 뒤인 1889년 '브라운 브라더스' 와이너리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초반에는 낙후된 시설에서 적은 양 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브라운 브라더스는 현재 4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가는, 130년 전통의 유명 와이너리가 되었다.

브라운 브라더스에서 생산하는 와인은 60여종에 이르는데 이 중 최고급 라인의 와인은 '패트리샤(Patricia)' 시리즈이다. 2003년 첫선을 보인 '패트리샤'는 브라운 브라더스의 2대 경영자였던 '패트리샤 브라운'의 이름으로 60여년간 와이너리와 가문을 훌륭히 이끈 그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담겨 있다. 


 패트리샤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 쉬라즈, 샤르도네 등 브라운 브라더스가 소유한 밭에서 자라는 다양한 품종을 활용하여 만들어지는데 각각의 품종은 모두 최고의 맛을 내는 해에 최상의 구역에서 수확한 포도만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상의 포도만을 쓰기에 아로마는 풍부하고, 맛은 깊고 그윽한 매력이 넘치는데 이처럼 패트리샤 와인을 위해 까다롭게 포도를 선별하는 것만으로도 브라더스 가문에서 패트리샤가 차지하는 위상과 그녀를 향한 후손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나 역시 패트리샤 샤르도네를 즐겨 마신다. 가볍지 않은 바디감과 균형감, 단단함이 느껴지며, 음식과 함께하기에 좋은 산도와 레몬, 감귤, 복숭아, 꽃향기, 다소 짭조름한 향인 미네럴라티, 민트향과 효모 숙성향이 어우러진 풍부한 노즈를 보여주는, 가성비가 참 좋은 와인이다. 


샴페인 뵈브 클리코와 브라운 브라더스의 패트리샤 시리즈는 이런 스토리를 담고 있기에 열심히 사회 생활을 하는 모든 여성에게 선물하기에 좋다. 특히 선물을 받을 분이 승진이나 이직에 성공했다면 더욱 안성맞춤이다. 또한 사회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열정을 갖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의 와인잔에 가득 채워주고 싶은 와인들이다. 

  얼마전 더 큰 회사로 이직한 워킹맘인 친구에게 간략한 의미를 설명하며 패트리샤 샤르도네를 선물했는데 친구가 참 기뻐해서 선물하는 나까지 행복해졌다. 승진 축하자리 등에 초대받았을 때 맛좋은 와인도 좋지만 관련된 의미가 있는 와인을 선물한다면 더욱 성의와 마음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다만 뵈브 클리코는 '과부'라는 말 때문에 결혼을 한 분에게 선물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있으니 참고하되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패트리샤 시리즈. 브라운 브라더스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으로 이렇게 다양한 품종으로 만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와인을 듣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